레자 라하디안의 연출 데뷔작 <판쿠의 시간>은 인도네시아의 한 여성을 응시한다. 영화는 임신한 사르티카가 생존을 위해 작은 해안 마을로 흘러 들어오는 과정에서, 존엄과 굴욕 사이를 오가는 나날을 차분히 기록한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희망’이라는 단어로 쉽게 포장될 수 없는, 절박함이 만든 내면의 풍경을 담아낸다.
사르티카는 새로운 삶을 개척한다기보다, 어디까지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 매 순간 시험받는다. 남성 손님의 무릎에 앉아 커피를 내리는 장면처럼, 그녀의 노동은 착취와 굴욕을 동반한다. 관객은 사르티카가 처음 커피집에 나가는 날 흘린 눈물이 진한 화장이 되는 것을 목격한다. 관객은 그녀의 표정 앞에서 묻게 된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어디까지 내려놓을 수 있을까.
영화는 중반 이후, 트럭 기사인 하디를 통해 다른 길을 제시하는 듯 보인다. 하디와의 만남은 사르티카가 드디어 평온함에 닿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이 기대는 너무도 익숙한 방식으로 깨져버린다. 바로 그 지점에서 영화는 단순한 구원의 서사로 흐르지 않고, 오히려 사르티카의 삶을 훨씬 입체적으로 만든다. 구원이란 쉽게 주어지지 않으며, 때로는 구원처럼 보이는 것이 또 다른 상처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 결말의 방향은 영화를 ‘절망 속 희망’으로 바꾸지 못하게 만들고, 오히려 절박한 여성의 시간을 더욱 깊이 새겨 넣는다.
더욱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사르티카가 마주치는 여러 “구원”의 형태가 사실은 모두 우연한 선심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해변가 마을까지 태워준 트럭 기사, 숙식을 허락한 커피집 아주머니, 언뜻 구원의 손길처럼 다가온 하디까지 그 모든 것들은 그녀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주지 않는다. 사르티카는 언제나 그 순간을 지나면 다시 홀로 서야 한다. 혼자의 시간이 마침내 되었을 때 사르티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어떤 과정을 더 건너갈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모든 과정을 응원하게 됨은 변함없다.
레자 라하디안은 배우로서 익숙한 감정 과잉을 배제하고, 연출자로서 절제된 시선을 택한다. 긴 호흡의 롱테이크와 담담한 리듬은 사르티카의 시간을 관객이 직접 통과하도록 만든다. <판쿠의 시간>이 남기는 울림은 화려한 희망이 아니라, 구원이 쉽게 오지 않는 현실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버티고 또 내려놓는가에 관한 물음이다.
결국 이 영화는 절망을 견디는 여성을 단순히 피해자로 그리지 않는다. 사르티카의 선택과 침묵, 그리고 때로는 굴욕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모두 기록되어 남는다. 그것은 우리가 “구원”이라 부르는 것이 얼마나 덧없고 우연적인지, 또 인간의 존엄이 얼마나 위태로운 조건 속에서 시험받는지를 드러낸다. 영화가 남기는 서늘한 잔향은 바로 그 지점에서 비롯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