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영화제가 시작되면 누구나 같은 고민에 빠진다. 바로 ‘어떤 영화를 볼까?’라는 것이다. 많은 작품들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지 결정하는 일은 늘 쉽지 않다. 나 역시 그 고민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티켓 카탈로그를 넘기다 한 장의 흑백 스틸컷에서 발길을 멈췄다. 소녀의 말간 얼굴이 마음을 붙잡았고, 그렇게 <또 다른 탄생>을 보게 되었다.
‘사람이 시든다’는 개념조차 모르는 소녀 파라스투가, 그리움에 지쳐 삶의 의미를 잃어가는 할아버지와 엄마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 한다. 소녀의 순수한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삶과 죽음, 그리움과 희망이라는 깊은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어린 소녀이지만 그녀가 품은 생각과 행동은 결코 작지 않다. 영화 속을 종횡무진하며 가족을 위해 애쓰는 파라스투의 모습은 귀엽고도 기특하다.
영화의 분위기는 활기차기보다는 차분하고 서정적이다. 대사도 많지 않고, 때로는 시가 화면을 대신해 감정을 전한다. 이처럼 고요한 리듬 속에 파라스투의 천진난만함이 더해져 영화는 독특한 울림을 만든다. 파라스투는 ‘그리움’이나 ‘삶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오직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음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자신이 삶의 의미가 되어주겠다고 선언하는 순간에는 그 순수함에 피식 웃음이 난다.
영화는 타지키스탄 샤다라 계곡을 배경으로 한다. 거대한 자연은 인물을 압도하면서도 따스하게 품는다. 특히 두 장면이 오래 남았다. 첫 번째는 두 마리의 귀여운 고양이로 시작하는 장면이다. 이어 계곡을 배경으로 나란히 걷는 파라스투와 단짝 글리스톤의 뒷모습이 이어지는데, 마치 고양이 두 마리가 소녀들을 닮은 듯한 인상을 준다. 그 발걸음을 바라보는 마음은 고양이를 지켜볼 때처럼 따뜻하다.
두 번째는 파라스투가 ‘그리움의 해법’을 찾아 숲으로 향하는 장면이다. 절벽 끝에 선 소녀를 붙잡아 데려오는 엄마의 순간에는, 어둠 속 압도적인 자연과 그 앞에 선 인간의 작음이 동시에 부각된다. 아이를 잃을 뻔한 엄마의 공포와 안도가 고스란히 전해져 관객 역시 숨을 죽이게 된다. 실내 장면에서도 감독의 감각은 빛난다. 창고 같은 단출한 공간조차 햇살을 활용해 그림 같은 장면으로 바꾸고, 창문을 드나드는 인물의 움직임이나 카메라의 깊이감으로 제한된 공간을 확장한다. 웅장한 자연과 소박한 공간 연출의 대비는 영화의 리듬에 특별한 변주를 더한다.
다시 파라스투로 돌아오면, 소녀는 여전히 아이답고 그래서 더 사랑스럽다. 세상의 무게를 다 알지는 못하지만, 가족을 지키겠다는 마음만은 진심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절망 속에 무너져가던 엄마가 딸의 해맑은 해답에 미소를 짓고, 그 미소를 따라 파라스투가 환하게 웃는 순간,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희망이 또렷하게 다가온다.
처음에는 그저 동화처럼 보였던 이 이야기가, 시간이 흐를수록 현실에서 실현되기를 바라게 된다. 파라스투의 맑은 해답이 환상에 머무르지 않고, 더 많은 이들이 삶의 시듦을 이겨내고 다시 의미와 희망을 찾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