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방 전체를 감싸는 푸른 조명과 느리지만 잔잔하게 울러퍼지는 쇼팽의 녹턴 2번 곡. 아기자기하고 몽환적인 조명으로 인해 화면은 마치 요람 속 아기를 재우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경선과 윤지의 시점을 제각각 보여주며 그들이 처한 상황들을 덤덤하게 그려낸다.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경선과 윤지는 같은 방을 쓰는 룸메이트일지라도 극과 극의 성격을 가진다. 경선은 언젠가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가고 싶어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적극적으로 돈을 모으지만, 윤지는 당장에 필요한 돈이 없어 궁하면서도 수동적이다. 윤지가 경선이 모아놓은 돈을 말없이 빌려 쓰면서 이들의 기묘한 관계는 영화가 끝나는 시점까지 계속해서 이어진다.
윤지는 담임 선생님인 종성이 유부남인 것을 알면서도 그와 만남을 가지고 임신까지 하게 된다. 윤지의 임신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종성은 그 후 행방이 묘연하다. 종성의 연락을 애타게 기다리지만 답장 하나 받지 못한다. 유일하게 이 사실을 아는 경선은 윤지가 왜 이렇게까지 종성에 매달리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종성의 아내 민영이가 학교로 들이닥치면서 윤지는 그의 실종 사실을 알아차린다.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윤지는 임신 중지를 위해서 경선의 돈 45만 원을 훔쳐 출처를 알 수 없는 약과 거래하고 종성의 연락을 기다린다. 혹시나 아기가 지워지면 종성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굳게 믿으면서. 그러나 영화는 잔혹한 현실을 비추며 믿음이 배신 당하는 순간들을 포착한다. 진실을 외면하기 위해 믿고, 믿어야 하기에 맹목적으로 믿는다. 영화는 그들의 믿음이 무색하게도 마침내 자신이 알고 있던 일말의 믿음마저 앗아가 버린다.
학생과 교사의 불륜, 미성년자의 임신, 낙태 등 다루기에 조금 어둡고 민감할 수 있는 자극적인 소재를 영화는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익살스럽게 나타낸다. 어느 10대 청소년이나 다름없는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예상치 못한 순간에 웃음을 자아내지만 이는 이들이 아직 어린아이일 뿐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장례식 예절 따위 알 겨를이 없는 같은 반 아이에게 미숙함이 보이는 것처럼, 초음파 검사를 하기 위해 검사실 의자에 앉아 있는 윤지의 모습은 어른의 형태가 아닌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그런 반면에 예고 없이 나타나 진실을 외면하고 자신의 믿음을 내세우는 민영에게는 추악한 어른의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민영과 윤지가 믿음을 배신 당하는 순간 그들의 역할은 서로 뒤바뀐다. 윤지는 어른이 되고 민영은 아이처럼 무너져 내린다.
가족이 될 수 있다는 믿음, 서로에 대해 다 알고 있다는 믿음, 앞에 계신 할아버지가 윤지의 가족일 거라는 믿음 등 크기와 상관없이 등장인물 모두가 배신의 쓴맛을 보게 된다. 책임질 수 있을 만큼만 사랑하는 것이 진짜 사랑이라면 그들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경선과 윤지는 다시 믿기 시작한다. 책임지기 위해, 또 사랑하기 위해 서로의 손을 맞잡고 앞으로 나아간다. 더 나은 내일이 오기를, 괜찮은 어른이 되기를 믿으며. 곁을 지키며 단순히 손을 잡아주는 것만으로 그들은 그들의 역할을 다한다. 극과 극이었던 두 사람은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책임지고 사랑하며 성장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