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맥시멀리스트의 변. 이건 누군가에게 받은 선물이고, 저건 다른 누군가와 추억이 깃든 물건이다. 열어보지도 않을 상자에 물건을 차곡차곡 쌓아 보관하다 가끔 열어보고, 이내 상자 뚜껑을 다시 닫아버린다. 버리지 못하는 핑계거리는 가지각색 같지만 들여다보면 똑같다. 내게‘는’ 가치 있는 것이라서.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센티멘탈 밸류>는 버릴 수 없는, 포기할 수 없는 것이 가득차 있다. 영화는 영화감독인 구스타브(스텔란 스카스가드)가 집으로 돌아와 노라(레나테 라인스베)에게 본인 영화에 출연하는 것을 제의하며 벌어지는 부녀간의 갈등을 담고 있다. 노라가 아버지와의 작업을 거절하고, 헐리우드 배우 레이첼 켐프(엘 패닝)가 그 배역을 맡게 되면서 두 사람의 감정의 골은 깊어만 간다.
영화의 제목인 ‘Sentimental Value’는 경제적 가치는 크지 않아도 정서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에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영화에서 인물이 버릴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영상 예술의 가치를 따져대는 구스타브의 고집이 그렇고, 끊어낼 수 없는 가족이 그렇다. 집을 단순한 물리적 공간을 넘어 안식처와 같은 관용어로 해석한다면 집도 그럴 것이다. 영화는 가족이 함께 살았던 붉은 저택으로 시작한다. 관객이 아름다운 외부 전경에 감탄하고 있을 무렵, 카메라는 이내 저택 내외부의 하자로 시선을 돌린다. 노라와 아그네스 자매가 유년시절에 겪은 상처는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드러난다. 갈라진 벽의 틈과 벽돌 아래로 새는 물은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짐작하게 할 뿐이다. 이처럼 요아킴 트리에가 그려내는 가족의 풍경은 극적이지 않다. 시간 속에 무뎌진 생채기는 더욱 무거운 울림으로 다가와 관객의 마음 깊숙한 곳에 강렬한 잔상을 남긴다.
<센티멘탈 밸류>는 영화 산업의 논쟁거리를 화두로 던지며 가족 이야기를 확장시킨다. OTT 시대에도 극장 상영을 당연시하는 구스타브의 태도는 구시대적인 고집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예술의 본질을 지키려는 신념으로 읽힌다. 또한, 레이첼 켐프가 마주한 한계에 대응하는 자세는 여배우가 수동적으로 머물 수밖에 없었던 산업 구조에 문제의식을 던지기도 한다. 이처럼 세대가 다른 예술가들이 마주한 문제를 비추는 시선은 부녀가 서로를 이해해 가는 과정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결국 이 영화는 무엇을 버릴 것인가가 아닌, 무엇을 끝까지 붙들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사람마다 소중히 여기는 정서적 가치는 다르지만, 그것을 지키려는 마음만은 닮아있기에. 요아킴 트리에는 그 마음이 만들어내는 갈등과 화해의 순간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센티멘탈 밸류>는 거창한 결말 대신 인물들의 미세한 감정의 진폭을 통해 우리 모두가 품고 있는 버리지 못하는 것을 다시 열어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