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공존이라니, 웃기시네> : 힘 있는 자의 ‘공존’이 말하지 않는 것들

By 박소연

노암 슈스터 엘리아시는 이란계 유대인인 어머니와 루마니아계 유대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님은 (노암에 따르면) 진보 좌파 지식인 유대인으로 유대인과 아랍인이 함께 사는 공동체 네베 샬롬으로 이주하고, 노암은 그곳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자란다. 노암은 네베 샬롬에서 만난 아랍인 친구와 베스트 프렌드가 되고, 상호 이해와 상호 책임이라는 평화의 슬로건 아래 평화와 공존을 꿈꾸는 인문들과 만나며 성장했다. UN에 가고, 평화 활동가가 되어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며 외치는 활동가로 성장한다.

 

영화는 노암의 스탠딩 코미디 공연, 브이로그, 과거의 뉴스 영상 등이 교차로 편집되어 노암의 과거와 현재를 번갈아가며 보여준다. 그러나 질문은 점점 커져간다. 공존의 공동체에서 지냈던 경험을 바탕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이 겪는 학살과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던 노암은 왜 지금은 ‘공존이라니, 웃기시네’ 라는 제목의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게 된 것일까.

 

팬데믹이 시작되며 미국에서 돌아온 노암은 점점 더 격화되는 전쟁과 네타냐후의 재집권 현실에 직면한다. ‘공존’이란 서로를 돕고 이해하며 평화롭게 존재하는 것.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노암이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발언을 해도 위협적인 악플에 그치지만, 팔레스타인인은 단지 그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한다. 이 불균형 속에서 단지 “학살을 멈춰달라”는 피켓을 드는 것만으로 공존’이라 부를 수 있을까?

 

2022년, 네타냐후의 재집권 이후 이스라엘에서는 매주 토요일마다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린다. 그러나 동시에 정착촌에서의 갈등은 더욱 치열해졌다. 집회의 참가자들은 민주주의를 원한다고 외쳤지만, 그 민주주의 안에는 팔레스타인 점령과 학살에 대한 문제는 배제되어 있다. 민주주의에 포함되는 사람들은 선택된 일부뿐이다.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이들과 공존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대규모 기습 공격이 벌어진다. 민간인 학살과 납치가 이어지면서 노암을 둘러싼 환경도 급격히 변한다. 의심과 불신이 휘몰아치는 혼돈 속에서 그녀는 코미디로 무엇을 이야기해야할지, 자신의 코미디가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진짜 공존이란 무엇인가? 역설적으로, 공존을 외칠 기회와 목소리를 전달할 권력은 힘 있는 자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힘 있는 쪽이 말하는 평화와 공존은 허상일 뿐이다. 결국 ‘공존’이라는 단어는 누구에게나 동일한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것은 권력을 쥔 자들의 언어가 되어가고, 억압당하는 이들에게는 허망한 구호가 되어가고 있다.

 

억압하는 자와 억눌린 자 사이에선 공존은 존재할 수 없다. 우리 모두가 평등할 때, 그때야 비로소 공존은 가능하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문제를 넘어, 우리가 이 세계를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나의 위치는 어디인지, 그리고 우리가 어떤 세계를 만들어가야 하는지에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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