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무엇이고 또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 것일까? 새롭게 만들어진 가족은 사랑 아래 구성원의 모든 것을 품으려 한다. 그렇게 함께 하는 것이 가족이다. 이민자인 켄지는 어쩌면 그러한 가족을 원했던 것 같다. 그의 과거에는 고향도 가족도 없다. 그가 가진 언어와 외모로는 현재 뉴욕에서 살아가고 있는 타인임을 증명할 수 있을 뿐이다. 켄지의 마음속에 자리한 폐허는 이러한 그의 본성에서 기인한다. 제인을 만났고 결혼을 하고 카이를 낳았고 5년이 흘렀다. 역시 중국인 이민자인 제인도 켄지와 같은 이민자의 고충을 함께한다. 열심히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던 그들이지만 부부로서의 모습에는 왠지 모를 이물감이 느껴진다.
그렇게 불안하고 복잡한 내면을 감춘 켄지의 외피는 어느 날부터 벌어지기 시작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어지럽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켄지의 처가가 운영하는 식료품 가게가 강도에게 털리고 급기야 카이가 사라진다. 황폐한 내면으로 가득 찬 삶에 닥친 위기는 그의 일상을 유지하던 모든 것을 무너뜨린다. 너무나도 다른 사람인 그는 아무도 찾지 않는 파괴되거나 버려진 곳에서 겨우 안식을 찾는다. 그리고 그 이유를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다. 그렇게 확장되는 그의 공허한 자의식은 가족이 파괴될지도 모를 위기 앞에서 폭력성으로 변한다.
켄지의 불안, 그가 품은 마음의 폐허는 타인들로부터 강제로 분리된 어린 자신에게서부터 시작된다. 그의 겉모습은 젠틀함 그 자체다.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건축학에서 무너지고 파괴된 상징인 ‘폐허’라는 독특한 주제를 연구하는 학자로서의 켄지의 모습과 카이를 돌보기 위해 애쓰는 가정적인 모습은 불만으로 투정하는 제인을 갸우뚱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하지만 그의 외양에 넘치는 사랑이 제인의 불만처럼 어딘가 불안정하다. 켄지가 남몰래 찾아가는 버려지고 방치된 극장은 그의 알 수 없는 내면의 불안을 표상한다. 그 폐허의 중심에서 그의 숨겨진 폭력성도 드러난다. 그는 이미 내면 깊숙이 자리한 지옥 속에서 빠져나오려 하지 않는다. 켄지는 겉보기에 보기 좋은 가족을 만들었고, 이민자로서 열심히 살아가는 학자이다. 하지만 그가 가진 내면의 지옥을 ‘폐허’를 연구한다는 허울 좋은 수식어로 가려 자신을 속인다. 이렇게 자신을 속여오니 켄지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인 제인은 그가 어딘가 미덥지 못하다. 켄지는 카이에게 좋은 아빠인 듯하나 이미 파괴되어 고착된 내면은 누구에게도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그는 사랑해서 제인과 결혼하고 카이를 함께 키우지만 바스러지고 텅빈 마음을 감추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자신의 진짜 모습인 황폐함을 누군가 들여다볼까 전전긍긍하는 낯선 사람일 뿐이다.
그에게서 사랑은 이미 껍질에 불과하다. 그가 절대로 이룰 수 없었던 누군가와 함께 가족이 되는 현실은 박살 나고 깨질 얇은 빙판 위에 선 죽음의 산물이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기나긴 인생에서 영화 속 켄지의 모든 것은 인간의 내면에 박힌 상처가 얼마나 극복하기 어려운 것인지 보여주는 표본 같다. 그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그 노력은 산산이 깨어진 유리 조각이다. 이것이 삶의 불확실성과 만나 그의 삶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