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식물의 입장에서 본 세계, 식물들이 보는 인간의 행동과 같은 주제를 이 영화는 다룬다. 3개의 시대가 등장하고 그 시대들 모두를 관통하여 생존한 은행나무가 각 시대의 인물들과 여러 가지 형태로 교감한다. 교감의 형태는 인간의 시각으로 보면 인간의 행동만 중심이 되는 일방적인 것 이지만 은행나무의 시각에서 보면 인간의 경우도 다른 식물이나 동물, 곤충들과 나누는 교감과 다를 바 없다.
영화는 은행나무의 수정과 발아 과정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며 시작된다. 이 장면을 처음에 보여 준 의미는 영화의 엔딩에 이르러 비로소 명확해진다. 영화의 주인공인 은행나무는 수나무와 암나무로 성별이 나뉘며 우리가 흔히 보는 은행 열매는 암나무에서 열린다. 수나무가 너무 멀리 있으면 정자의 이동이 어려워 암나무는 수정을 하기 힘들 수도 있다. 3억 5천만 년 전부터 생존해 온 식물의 번식방법으로는 특별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1832년에 이 세상에 나온 은행나무는 독일의 한 대학에서 세 개의 시대에서 각각 다른 인간들과 인연을 맺는다. 1908년에 만나는 그레테는 성적인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고 그 대학에 입학한 최초의 여자 신입생이다. 그녀는 총명하고 진보적이며 자유를 갈망한다. 사진 기술을 익힌 후 식물과 인간을 찍은 사진들을 비교하고 그 유사함에 놀란다. 1972년의 대학생 한스는 문학도이고 시를 좋아한다. 그는 여자친구가 키우는 제라늄을 대신 키우면서 식물이 신경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을 측정기를 통해 알게 되고 제라늄과 소통을 하게 된다. 세 번째로 2020년에 만나는 홍콩의 신경학자 토니 웡 교수는 성인과 아기의 신경 인식체계를 비교 연구하고 있다. 그래서 자극과 반응에 관한 측정도구와 자료들을 잘 갖추고 있다. 이 도구를 이용하여 은행나무와 나름대로의 소통이 이루어지고 그 소통의 결과로 감동의 엔딩으로 이어진다.
영화의 앵글은 은행나무의 시점과 인간의 시점을 나타날 때 사용된다. 은행나무 높이에서 보는 하이앵글이 사용된다. 나무에 해를 끼치는 인간의 행동들에 반응하는 은행나무의 신경전달체계를 보여 주는 장면들은 특히 흥미롭다. 은행나무의 성장을 세 시대의 배경화면을 통해 보여 준다. 시대의 전환은 순서 없이 이루어지지만 흑백화면과 조명 변화 등을 사용하여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며 관객에게 혼란을 주지 않는다.
가끔 은행나무에 앉아 있는 부엉이의 시선으로 화면이 보여 진다. 그 외에 은행나무에 둥지를 튼 작은 동물들이나 장수하늘소 같은 곤충들의 화면이 삽입되고 새로운 은행잎이 죽은 것 같은 나무줄기에서 새로 나는 것도 보여 준다. 이 장면들은 모든 생명체가 각자의 시각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영화의 중간에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웡 박사가 사용하는 번역기를 통한 관리인과의 대화도 의미 있게 사용되었다고 본다. 식물과의 대화가 아닌 인간들 간의 대화도 언어를 서로 바꾸어 주는 도구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영화의 엔딩은 결국 이 영화를 이끌어 간 주인공이 누구인가를 알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