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대통령의 케이크> : 강물에 겹쳐진 얼굴

By 이미영

  이라크 1990년대, 경제 제재와 전쟁으로 모든 것이 부족한 시기. 영화 <대통령의 케이크>는 그 척박한 시대를 9살 소녀 라미아의 눈을 통해 보여준다.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라미아는 반에서 1등을 하는 똑똑한 아이지만, 늘 배고프고 삶은 어렵다. 어느 날 학교에서 대통령의 케이크 뽑기에 걸린 라미아는 불가능에 가까운 과제를 떠안고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며 기름, 설탕, 달걀 하나까지 부탁하고 거래한다. 이 여정은 단순한 과제가 아니라, 어린아이가 감당해야 했던 시대의 무게를 온몸으로 건너는 통로다.

 

  영화는 당시 이라크 정권의 부조리를 대놓고 고발하지 않는다. 교실 벽의 초상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 가게 구석의 포스터처럼 삶에 스며든 이미지를 통해 그 존재감을 은근히 드러낸다. 이러한 연출은 당시 사람들이 억압을 공기처럼 들이마시며 살았음을 느끼게 한다. 정치적 목소리를 직접 외치기보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권력이 삶을 잠식하는 방식을 보여주며 오히려 설득력을 얻는다.

 

  라미아가 케이크 재료를 구하는 과정은 국가가 강요한 충성의 시험이다. 그녀는 위협과 냉대, 부당한 요구에 직면하고, 생존을 위해 평소 하지 않던 거짓말까지 한다. 하지만 라미아는 혼자가 아니다. 친구 사미드와 함께 힘을 합쳐 자루를 나르고 서로의 어깨를 지탱한다. 두 아이가 서로 눈싸움하며 웃는 장면은 잠시나마 세상을 잊고 아이로 남아 있으려는 작은 몸짓처럼 다가온다.

 

  이 과정 속 라미아 곁에는 늘 수탉 힌드가 있다. 힌드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라 라미아가 끝까지 지켜내고 싶은 작은 세계다. 그녀가 힌드를 품에 안고 다니는 모습은, 모든 것이 무너져 가는 가운데서도 아직 놓지 않은 마음 한 조각을 보여준다. 영화 속 은은하게 등장하는 고양이는 라미아가 점점 잃어가고 있는 유년의 공간과 집의 따뜻함을 떠올리게 한다. 힌드와 고양이는 라미아가 무엇을 지키고 싶어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지를 동시에 드러낸다.

 

  그렇게 어렵게 케이크를 완성하지만 영화는 끝내 그 모습을 카메라로 또렷이 보여주지 않는다. 감독은 결과보다 과정, 케이크보다 그 과정을 거친 라미아의 얼굴에 초점을 맞춘다. 관객은 완성품 대신 라미아의 변화한 눈빛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라미아는 다시 강을 건넌다. 초반부에 물에 비친 얼굴은 분명히 아이였지만, 이제 어둠 속에서 얼굴은 보이지 않고 물 위에 비친 얼굴만이 선명하다. 그 얼굴은 더 이상 아이의 얼굴이 아니라, 어른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 라미아가 잃어버린 순수와 얻은 시간, 그 모든 순간이 물 위에 차분히 떠오른다. 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라미아가 건너온 길과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조용히 비춰준다. 그 순간, 라미아는 어린 시절을 넘어 어른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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