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나가노 료타 감독의 『오빠를 들고 갈 수 있는 사이즈로』는 무라이 리코의 자전적 에세이 『오빠가 죽었다』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원작의 직접적인 제목과 달리, 영화 제목은 낯설고 쉽게 의미를 짐작하기 어렵다. 하지만 영화 속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이 낯선 제목이야말로 영화를 가장 효과적으로 함축했음을 깨닫게 된다. 한 사람의 죽음이 남겨진 이들에게 어떤 ‘크기’로 다가오는지, 그리고 그 크기를 어떻게 ‘감당 가능한 사이즈’로 정리해 나가는지를 영화는 차분하게 보여준다.
갑작스러운 죽음, 흔들리지 않는 일상
영화는 방에서 조용히 공부하던 소년이 책상 밑 책을 집어 드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이가 우연처럼 펼친 책의 첫 장에는 ’속박이 아니라 버팀목이다‘라는 말이 적혀있다. 무엇이 속박이고 무엇이 버팀목인지 에 대한 물음을 안고 영화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어느 날 저녁, 주인공 ‘리코‘에게 낯선 전화가 걸려 온다. 지역번호 022. 익숙하지 않은 지역번호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받은 전화는 갑작스러운 소식을 알린다. 바로 오빠의 죽음이다. 시오가마현 경찰은 오빠가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사망했음을 알리며, 이혼한 아내 대신 동생이 시신을 인수해야 한다고 전한다. (참고로 리코가 사는 지역에서 오빠가 사는 지역은 서울과 부산 거리의 약 2배 정도 된다.)
오빠의 죽음을 대하는 리코의 모습은 혈연의 비보를 접했다 보기 힘들 정도로 담담하다. 이는 오빠와 리코가 맺었던 관계의 실제적인 거리감을 드러낸다. 차라리 업무 전화를 받았다는 게 어울릴 정도로 죽음이라는 큰 사건과 마주하고도 자신이 해야 할 일정과 다가올 주말 아들의 럭비시합의 일정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리코는 정해진 일정을 모두 소화하겠다는 마음속 계산을 끝내고 경찰관에게 5일 후에나 시체를 수습하러 갈 수 있다 답한다. 내 세상을 깰 수 없는 존재, 이것이 리코 안에 자리 잡은 오빠의 존재감이다. 오빠의 죽음이 리코의 일상에 차지하는 비중은 그녀의 일상에 파문을 일으킬 정도의 사건이 아니었다. 하지만 리코의 반응과 달리 남편과 두 아들은 외삼촌을 어서 찾아가라며 재촉한다. 결국 일정을 변경해 리코는 오빠의 시체를 수습하러 간다. 바로 오빠를 들고 갈 수 있는 사이즈로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주어진 가족과 선택한 가족
영화에서는 리코를 중심으로 크게 두 가지의 가족 형태를 보여준다. 태어남과 동시에 주어진 원가족, 그리고 선택과 제도를 통해 만들어진 가족. 교류 없이 지내왔지만 혈연으로 묶여있다는 사실로 인해 리코는 오빠의 시신을 수습해야 할 사회적 책임을 떠안는다. 오빠와 이혼한 전부인 카나코와 딸 마리나는 실제로 더 가깝고 긴밀한 관계였지만 시체 수습을 둘러싸곤 제도적으로 아무 권한이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를 치르고, 집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매번 머뭇거리는 리코와 달리 카나코는 좀 더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냄새나는 이불도 먼저 나서서 치우고, 리코가 주저하는 냄새나는 전 남편의 집에서도 잘 수 있다 당당히 표현한다. 둘의 대조적인 모습을 보는 관객은 가족의 경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평생을 걸쳐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혈연으로 묶인 관계인지 아니면 인연이 만든 관계인지에 대해 영화는 질문을 던진다.
각자 감당할 수 있는 크기의 추억
오빠는 생전 주변인들에게 번번이 실망만 안긴 인물이었다. 어릴 적부터 편애하다시피 자신을 사랑한 엄마가 췌장암에 걸리자 고향을 떠나며 외면했고, 가정을 지키지 못해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을 감행했으며, 돈이 필요할 때면 여동생에게 스스럼없이 부탁했다. 리코와 카나코를 비롯한 영화 속 인물들은 망자에 대한 회한을 나누기보다 눈앞의 현실에 집중하며 떠나간 인연을 마무리한다. 한 사람이 남긴 흔적은 4일 만에 모두 사라진다. 화장 후 남은 유해와 사람들 마음속에 남은 기억이 오빠가 남긴 전부다.
오빠의 진실이 드러나면서 영화는 한 사람의 삶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것처럼 전개된다. 하지만 ’돈 없이 행복한 집은 없다‘는 카나코의 마지막 말은 지나간 흔적을 다시 현실적으로 새기고, 남겨진 자들이 각자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추억을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들에게 오빠의 죽음은 격정적인 슬픔이 아닌 잠시 눈에 고였다 사라지는 눈물의 무게로 기억된다.
영화는 죽음을 특별한 사건으로 포장하지 않고, 일상의 과정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관객은 리코의 여정을 따라가며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과 직면한다. 가족은 속박이자 동시에 버팀목이며, 애정의 대상이 되면서도 한편으로 짐이 되는 양가적 성격을 지닌다. 나가노 료타 감독은 이러한 모순을 극적인 장치 없이 담담하게 기록함으로써, 남겨진 자가 떠난 자를 어떻게 기억하고 수용하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행복을 주었던 가족이든, 원망의 대상으로 남은 가족이든, 우리는 그 존재를 각자의 감당 가능한 크기로 바꿔 마음속에 간직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영화는 개인적 경험을 넘어 보편적인 질문을 던지며 가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