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켈리 라이카트는 언제나 좁지만 섬세하고 내밀한 시선으로 사소한 것들에 주목한다. 라이카트의 영화는 언제나 장르를 비트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장르의 규칙을 거스르면서도 그 해체를 결코 공격적이거나 냉소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라이카트의 영화에는 늘 ‘사려 깊음과 다정함’이 깃들어 있다. 이는 단순히 관객에게 전해지는 태도일 뿐만 아니라 영화 속 인물들에게도 해당된다. 즉, 라이카트의 카메라는 인물들을 비난하거나 조롱하지 않는다. 인물들이 실패하거나 문제적인 면모를 드러낼 때조차, 그녀는 결코 그들을 헐뜯는 대신, 한 발짝 물러난 거리에서 그들의 실패와 허세, 그리고 무능마저도 섬세히 감각할 수 있는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따라서 라이카트의 영화는 무엇에 관한 비판인 동시에 그것에 관한 애정 어린 잔상을 남긴다. 그것이 우리가 그녀의 영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다.
<마스터마인드>는 이러한 라이카트의 미학적 태도를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으로 읽힌다. 이 작품은 범죄 장르의 변주라 할 수 있는 ‘하이스트’ 영화의 외피를 걸치고 있지만, 예상하듯이 영화는 범죄 자체에는 흥미가 없다. 조쉬 오코너가 연기한 주인공 JB 무니는 능숙한 범죄자도 치밀한 전략가도 아니다. 그가 벌일 사건의 준비나 실행은 어설프기 짝이 없다. 오히려 영화는 범죄 이후의 허망함, 준비되지 않은 삶이 우연과 실패 속에서 어떻게 좌초하는지를 포착한다. 무니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사소한 욕망에 휩쓸려, 그림 몇 점을 훔치려다 초라하게 무너진다. 이 과정에서 탄생하는 순간들은 스릴러적 긴장이 아니라 희극적이고 우스꽝스러운 장면들의 연속이다. 그림을 훔치고 숨기는 서툴고 어색한 몸짓들은 씁쓸한 웃음을 불러 일으킨다.
이 영화가 다루는 것은 단순한 ‘남성성의 고발’로 환원되지 않는다. 물론 무니의 허세와 무능은 가부장적 환상의 붕괴를 드러낸다. 그러나 라이카트는 남성성의 몰락을 고발의 대상으로 삼는 대신 그것을 통해 삶이 무너지는 과정 자체에 집중한다. 가족의 해체, 일상의 균열, 준비하지 못한 자가 세상의 리듬에 휩쓸리는 순간들. 영화는 무니의 의지나 선택과는 무관하게, 그의 삶이 어느덧 하나의 사회적 풍경을 비추는 장치가 되어버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때 라이카트의 카메라는 언제나 삐딱하게 서 있는 하찮은 인물들을 포착한다. 그 시선은 성공의 순간이 아닌 실패에, 다시 말해 이미 다 끝나버린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 주로 머물며 그곳에서 인물 스스로 깨닫지 못한 새로운 진실을 직면하게 한다.
라이카트의 이전 작인 <쇼잉 업>에서 예술가의 창작 과정이 일상의 사소한 좌절로 점철되어 있었다면 <마스터마인드>는 동일한 미학을 범죄 장르로 확장하는 과정처럼 보인다. 창작과 절도는 서로 다른 행위처럼 보이지만 그 근원에는 스스로를 증명하려는 욕망이 자리한다. 그러나 그 욕망은 언제나 좌절과 어긋남 속에서 무너지고 만다. 라이카트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성취했는가가 아니다. 오히려 성취에 이르지 못한 실패의 순간, 어긋남의 균열에서만 드러나는 인간적 진실이다. 그녀의 카메라는 그 진실을 포착하기 위해 성공의 클라이맥스 대신 실패의 잔해에 머무르며, 바로 그곳에서 인간을 가장 뚜렷하게 드러내는 사소한 몸짓들을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