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미러 NO.3> : 음악이라는 세 번째 거울

By 정종윤

​음악이란 예술은 다른 예술 장르와 달리 무척 직감적이다. 구도라든가 운율과 같은 형식을 몰라도 몸이 먼저 반응한다. 더구나 이 신체적 공감은 시간 질서에 절대적으로 순응한다. 미술관에서 작품은 취향에 따라 빠르게 지나칠 수도 있고 소설은 속독으로 읽어도 천천히 읽어도 무방하다. 그러나 음악은 압축하는 순간 전혀 다른 소음이 되어버린다. 공연을 감상하든 플레이어로 재생을 하든 음악적 감흥은 일상의 시간을 충실히 통과함으로써 얻는 성과이다. <미러 NO.3>는 바로 이와 같은 음악의 일상적 체험성을 확장하고자 시도한다.

 

영화는 젊은 음악가인 라우라(파울라 베어)가 다리에서 수면을 지긋이 내려다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한눈에 보아도 이 여성에게 큰 고민이 있는 걸 눈치채려는 즈음 <미러 NO.3>​는 돌발적인 사건으로 관객의 시점을 주인공에게서 떨어뜨려 놓는다. 거기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주변 사람들은 급변한 상황을 수용한다. 어쩌면 환영한다는 표현이 더 올바른지도 모르겠다. 이 음악가의 고민이 무엇인지 관객의 관심에서 멀어질 무렵 주변 사람들의 사연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 영화에서 독특한 점은 인물들이 자기 심경을 직접 언어로 설명하기보다 어떤 매체를 공유하면서 알리고자 한다는 것이다. 만사에 무기력하던 라우라가 울타리의 페인트 작업에 흥미를 보이자 베티(바르바라 아우어)는 여기서 느낀 자신의 유쾌함을 톰 소여의 모험에 등장하는 페인트 칠 에피소드에 빗대어 표현한다. 또한 라우라는 자기 장기인 피아노 연주 외에 쾨니히스베르거 만두 요리로 주변 사람들에게 호의를 드러낸다.

 

<미러 NO.3>에서 인물들은 대부분 남에게 말하지 못할 고민을 지니고 있다. 영화는 이걸 전면화하는 데는 그다지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에 도달해서야 작은 조짐을 보여줄 따름이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시선은 라우라를 벗어나 주변 인물들의 사연에 집중된다. 다시 말해 인물 서사는 연속적이지 않고 주변 상황에 대한 설명은 상세하지 않다. 영화에서 인물들의 내면은 의도적으로 후면에 배치되어 있다. 대신 인물들을 대변하며 주변 상황을 표현하는 매체는 단연코 음악이다.

 

감독의 전작 <피닉스>(2014)에서 보여준 음악에 대한 신뢰는 이 영화에서도 여전하다. <미러 NO.3>에서는 인물들이 일상을 보낼 때 함께 하는 여러 음악이 있다. 심지어 중요한 이야기를 건네야 할 때도 그 시공간을 차지하는 매체는 담화가 아니라 음악이다. 보통 음악이 장면과 메시지의 분위기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게 대다수이지만 이 작품에서 음악은 그 자리를 초월하고자 한다.  <미러 NO.3>​에서 인물들이 운전을 할 때도 공장에서 작업을 할 때도 음악이 함께 함은 물론 인물이 전달해야 할 메시지를 음악이 전달하는 것이다. 즉 예술이 일상적 의미의 영역에서 언어의 역할을 공유한다. 관객은 라우라의 심경에 대한 설명을 본인에게서 직접 들을 수 없지만 연주를 들을 수 있다. 여기서 연주는 예술적 공연 행위를 넘어 일상적 의미 전달까지 기능한다.

 

아름다운 화면의 색감, 푸른 하늘과 버무려진 피아노 타건음은 이 작품이 음악에 얼마나 큰 애정을 품고 있는지 나타내는 증표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언어가 인간을 나타내는 두 번째 거울이라면 음악은 세 번째 거울이라고  <미러 NO.3>​는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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