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그림자가 여전히 길게 드리운 아르메니아. 적으로 오인돼 사살된 아버지의 죽음을 모른 채, 클로데트는 군인 아톰과 외딴 수도원으로 자동차 여행을 떠난다. 현실의 경계를 지우는 카메라는 불안한 ‘꿈 이후’ 나른한 몸과 땅에 새겨진 상흔을 시적으로 비춘다. 느릿한 핸드헬드와 번졌다가 수축하는 듯한 초점은 살아남은 자들의 불안정한 호흡을 따라가며 인간 내면의 공허를 포착해 낸다. 약 15분간 전통 음악 속에서 펼쳐지는 집단 결혼식은 전쟁으로 파괴되고 침식한 일상과 친밀성을 극적으로 드러내며 영화의 정점을 찍는다. 꿈처럼 작동하는 이 여정은 관객을 비몽사몽의 세계로 초대하고, 감독이 “제노사이드 브레인”이라고 말한, 세대를 관통해 유전되는 집단 트라우마와 디아스포라의 영구적 불안을 각자의 꿈에 새겨 넣는다. (채경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