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 비전
녹진한 햇살이 들어오는 아늑한 방 안에 나란히 앉아 재잘거리는 앳된 얼굴 셋. 혜미와 친구들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장난을 치거나, 서로 마주보며 숨 넘어갈 듯 웃기도 한다. 우리로 하여금 이제 아득해진 교복 시절의 향수를 떠올리게 한다. 어리고 철 없는 학생이라는 정체성으로만 이들을 바라볼 수 있을까. 인생에서 가장 실수하는 시기. 호르몬에 지는 시기. 나에게 가장 솔직하다가도 어떤 식으로든 자신만의 그늘을 보여주지 않는 비밀스러운 시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이 아이들을 이해한다. 다정하게, 인내하며, 사랑으로. 청소년의 치기는 누구나 경험하는 속성일 거다. 아마 미성숙한 존재이기 때문이겠지. 덜 자란 이들의 세계는 반짝임만으로 아름답다.
달과 동전의 뒷면처럼 밝아보이는 혜미에게도 나름의 비밀이 있다. 겉보기엔 지극히 평범한 가정 같지만, 혜미는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부모님을 당당하게 소개할 수 없다. 혜미의 어딘가 이상한 태도, 방 건너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들, 몇 장면이 더 스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언제나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부모님은 혜미의 눈에는 내세우기 부끄러운 존재다. 마음 편히 기댈 수 있는 보통의 다른 가정과 달리 혜미는 어린 자신이 부모를 항상 챙겨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린다.
영화는 평범하지 않은 혜미의 가정에서부터 그가 현실 도피를 돕는 특별한 취미인 춤, 보편적 소재인 친구와의 우정과 갈등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혜미는 그럴 필요 없는 상황에서 자존심을 과도하게 세우거나, 자신을 무시하는 거 같으면 사소한 일 하나에도 지나치게 예민하게 굴기도 한다. 이러한 과민반응, 방어적 태도는 항상 관계에 있어 긴장해야 하는 혜미의 현실을 보여준다. 그런 혜미에게 본인의 처지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새 친구가 나타난다. 혜미와 소위 인플루언서 지망생인 엄마를 둔 이웃 은우는 천체관측 동아리를 계기로 가까워진다. 혜미의 눈에 은우의 엄마는 내 엄마를 이용해먹는 불안하고 믿을 수 없는 사람이다. 엄마를 데리고 라이브를 켜거나, 이상한 릴스를 찍거나. 시도때도 없이 그녀를 불러내는 은우의 엄마부터 잘해주는 사람이면 전부 신뢰하는 우리 엄마까지 온통 혜미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관계의 불안정성 위에 놓인 혜미는 엄마에게도 진정한 친구가 생길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영화는 엄마와 은우 엄마와의 관계에서 시작해 혜미와 은우 둘의 관계로 나아가며 그들이 서로를 애정하고 신뢰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교실, 집, 근처 산책로 같은 다양한 장소와 댄스, 노래, 라이브 방송처럼 다양한 계기를 만들며. 혜미는 그간의 방어적 관계에서 벗어나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영화는 그 과정을 친절한 은유로 드러낸다. 혜미와 은우는 그들의 부모님처럼 별과 달을 바라보며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진정으로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나약하고 불안정한 사춘기 혜미에게 결코 들키고 싶지 않은 예민하고 나약한 약점은 다름 아닌 가족이었다. 나와 가장 가깝고, 마땅히 그래야 하지만 그러지 못한. 이는 혜미의 근원이자 가장 아픈 부분이다. 여러 오해를 거쳐 마침내 혜미는 자신의 속에서 억눌려있던 부모님을 세상 밖으로 내보내기로 한다. 다시 학교로 돌아와 커다랗게 울리는 음악에 몸을 맡긴 채 여러 친구와 어울려 정신없이 춤을 추는 혜미의 모습에서 우리는 알 수 없는 묘한 해방감과 시원섭섭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마치 별빛이 돌아다니는 것처럼 반짝이는 조명 속에서 움직이는 몸. 혜미가 진짜 원했던 내면의 자유. 존재만으로 사랑스러운 청춘. 혜미와 은우, 그들 가족의 다음과 다음, 그 너머의 성장을 응원하게 만드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