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불쾌하게 이어지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의 끝에서 무표정한 얼굴의 카샤를 만난다. 그녀는 폭력적인 남자 친구의 강요로 빈집에 침입해 물건을 훔치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사망한 남자가 홀로 남겨진 집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고, 궁지에 몰린 카샤는 그가 살았던 공간으로 다시 돌아간다. 그리고 마치 그와 친밀한 관계였던 것처럼 행세하며 삶의 바꿀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그제고시 뎅보프스키감독의 <타인에게 속한 것들>은 점차 복잡한 양상으로 변모하는 카샤의 기만적인 여정을 절제된 시선으로 따라간다.
영화는 공간을 통해 세상과 단절되어있는 카샤와 바르샤바의 사람들을 담는다.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사람들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아가며 문만 열면 마주칠 수 있고 복도를 오가며 만나기도 하지만 서로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는다. 물리적으로는 가까이 있지만 정서적으로 철저히 분리된 삶이다. 이러한 단절은 카샤가 타인의 삶에서 훔쳐낸 관계를 자신의 것처럼 꾸며낼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애초에 연기를 잘하지도 못하는 그녀의 거짓말을 사람들이 쉽게 믿는 것은 이런 무관심의 틈 때문이고 덕분에 카샤는 이런 거짓 속에서 설 자리가 생긴다.
영화는 인물과 거리를 유지한 다큐멘터리적인 시선과 롱테이크로 전개된다. 이러한 시선은 카샤의 일상에 자리하고 있는 범죄행위를 단순하게 이분법적으로 판단하지 않아 영화를 일반적인 도덕극으로 만들지 않는다. 카샤를 감상적으로 묘사하지 않으려는 시도 속에서 오히려 인물의 내면에 더욱 귀 기울이게 된다. 와이드숏과 하이앵글 구도를 통해 부여한 거리감과 그 속에 위치한 작은 크기의 카샤는 카메라의 시선만으로도 인물의 약함, 불안, 고립, 좌절 등의 감정을 느끼게 하고 그녀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도시의 일상적 태도까지 확장해 보여준다.
카샤는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이다. 쫓겨나고 몰래 들어가는 상황이 일상이었던 그녀에게 사망한 남자의 여자 친구라는 그 연결성 하나로 열리지 않던 문이 열리고 단절이 사라져간다. 영화 속에 나오는 문들의 드나듦을 이용해 감독은 카샤의 외부적인 상황이 변함과 동시에 내부에도 변화가 있음을 드러낸다. 스스로 문을 열고 나갈 수도, 들어올 수도 있게 된 카샤는 이제 두 발을 붙일 수 있는 지면을 찾은 듯 보인다.
‘타인에게 속한 것들’ 중에서 카샤가 훔치던 것들은 처음엔 물건이었지만, 그녀가 궁극적으로 필요하고 갖고 싶던 것은 무엇인지 계속 상기시키며 영화는 카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들의 삶도 되돌아보게 한다. 사회에 속한다는 감정이 없을 때 생기는 외로움이 변모하는 과정을 담으려고 고군분투한 감독의 노력이 영화 속에 여실히 담겨있다. 사망한 남자의 파편들로 재구성된 카샤의 삶이 ‘타인에게 속한 것들’ 속에서 어떻게 나아가는지 관객에게 대답을 맡기고 떠난 그 자리에 긴 여운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