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오늘 밤, 사랑은 일어난다> : 난니인 듯 난니 같지 않은 난니 영화

By 정은진

3년 전 <찬란한 내일로>를 보며 난니 모레티의 마지막 인사 같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영화 세계를 전반적으로 아우르며 팬들에게 건네는 작별의 선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돌아왔다. 이번 신작 <오늘 밤, 사랑은 일어난다>를 보고 나니 내가 너무 일찍 작별을 걱정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우리 감독님에게는 하고 싶은 영화가 많이 남아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조금 다르다. 여전히 난니가 운전대를 잡고 있음은 분명하지만, 이번에 그가 들어선 트랙은 낯설다. 그럼에도 반갑다. 웰컴 백, 감독님!

 

이번 영화는 출발점부터 달랐다. 평소 해외 로케이션을 즐기지 않던 감독이지만, 이번에는 남자 주인공이 노르웨이에서, 여자 주인공이 인도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들은 이탈리아로 돌아왔다가 잠시 스페인에 들르고, 다시 이탈리아로 향한다. 이탈리아의 골목과 자신에게 익숙한 공간에 집중하던 기존의 난니에게서는 보기 어려웠던 동선이다. 묘사하는 방식은 분명 난니인데, 어딘가 새롭다.

 

게다가 가족의 가치를 중시해 온 난니가 두 가족을 위협하는 끈질긴 불륜이라는 소재를 가져왔고, 심지어 성애 장면까지 넣었다. 아니, 난니 영화에서 내가 이런 장면을 볼 줄이야! 그렇다고 낯선 것 투성이인 이 영화가 완전히 다른 감독의 작품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던 ‘난니다움’은 여전히 남아 있다. 기존의 방식을 버렸다기보다는, 그동안 충분히 펼치지 못했던 서사적 욕망을 새로운 방식으로 시도하고 있다.

 

 사실 그의 영화에는 늘 음악을 향한 열정이 있었다. 이전 영화들에서도 뮤지컬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이야기했고, 전작 <찬란한 내일로>에서도 그 가능성을 살짝 내비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음악에 대한 사랑을 한층 과감하게 표현한다. 마치 발리우드 영화에서나 볼 법한 본격적인 뮤지컬 요소가 등장하고, 감각적인 리듬감이 영화 전체를 이끈다. 이전 작품에서 꿈꾸거나 암시했던 음악적 욕망을 이제는 영화의 형식으로 마음껏 펼쳐 보이는 듯하다. 난니가 기존의 문법에서 멀리 나아가는 순간에도 내가 좋아하는 난니다움은 여전히 빛난다.

 

 ​유머의 활용 역시 흥미롭다. 그가 유머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품은 주로 정치 영화였고, 가족을 다룬 영화는 유머를 배제한 비극에 가까운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정치적 요소를 덜어낸 가족 이야기이면서도 유머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아픈 아버지와 함께 스페인으로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공연을 보러 가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인물들의 모순과 불안정한 관계 속에서 유머는 슬픔과 사랑을 동시에 드러낸다.

 

스프링스틴이 콘서트에서 부르는 의 가사는 이 영화를 바라보는 난니의 시선과 겹쳐 보인다. 누구나 채워지지 않은 마음과 욕망을 품고 있다는 노래의 메시지처럼​ 사랑하는 사람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선택은 분명 관계를 흔들지만, 영화는 인물들을 도덕적으로 단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들의 선택을 간단히 정당화하지도 않는다. 누구나 결핍과 욕망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욕망이 가족과 사랑에 남기는 아픔까지 함께 끌어안으려는 듯하다.​​​

 

난니는 과거에 늘 더 나은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번 베니스 영화제 기자회견에서는 “이제는 늘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영화를 보고 나니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주인공으로 출연해 온 난니 자신도 이번에는 카메오로 등장한다. 그런데 그 짧은 순간이 또 너무나 난니다워서 소중하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사랑해 온 난니를 만난 기분이다.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면서도 그 특유의 유머와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살아 있다.

 

거장 감독이 자신이 구축해 온 세계의 틀을 깨는 것은 쉽지 않다. 자신의 세계를 버리는 대신 그 경계를 넓혀 가는 것. 난니의 오랜 팬으로서 이미 객관적인 평가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번 <오늘 밤, 사랑은 일어난다>는 작별이 아닌, 새로운 ‘난니니즘’의 시작을 알리는 영화다.

감독님, 앞으로도 하고 싶은 것 마음껏 도전해 주세요. 그러면서 그동안의 난니다움도 잊지 않은 채로 부탁드립니다. 그렇다면 저는 기꺼이 그 변화를 즐겁게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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