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 비전

<화곡사> : 한 생을 보내는 방식

By 김정화

 

삶의 끝을 안다는 것은 삶의 의미까지 안다는 뜻일까. 인간은 예로부터 삶과 죽음에 대해 천착해왔다.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으며, 죽음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주창한 고대 그리스의 에피쿠로스학파부터, 삶이란 ‘매일 죽음을 연습하는 일’이라고 한 플라톤을 거쳐 ‘죽음이란 그저 또 다른 위대한 모험에 불과하다’는 오늘날의 작가 조앤 K. 롤링까지 시대를 불문한 사유의 끈이 이어져 왔다. 하지만 질문은 언제나 인간의 유한함이라는 단단한 벽에 부딪혀 지금 이 순간의 생생한 실존을 확인하는 일에 가까워질 뿐, 명쾌한 해답을 주지는 못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주어지는 사건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에는 저마다의 차이가 있다.

 

김시진 감독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화곡사>는 이 간극을 화장터라는 구체적인 공간에 펼쳐 놓으며, 한 생을 마무리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묻는다. 이야기는 병원에서 더 이상 삶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진단을 받은 이 소장이 오래전부터 몸담아 온 화장장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그곳은 그가 수많은 망자를 떠나보내며 생의 대부분을 보낸 일터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돌아온 그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어딘가 어색하다. 망자의 마지막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사람이 정작 자신의 죽음을 완결하지 못하는 상황은 영화의 기이한 서사를 이끌어 간다. 이 소장은 오랫동안 죽음의 현장을 지켜보며 수많은 이들의 마지막을 일상적으로 수행해 왔다. 그에게 죽음은 추상적인 관념을 넘어 매일 반복되는 구체적인 노동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죽음의 당사자가 되는 순간,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타인의 죽음을 처리하는 일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로 다가온다.

 

더욱이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은 이 소장의 시신은 화장로 안에서도 좀처럼 소멸하지 않는다. 죽은 육체는 화장이라는 절차를 통해 자연스러운 종결에 이르러야 하지만, 영화 속 육체는 그 질서에 순순히 따르지 않는 것이다. 무엇이 한 인간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인가 이루지 못한 소망일까, 아니면 끝내 놓지 못한 사람과의 관계인가. 영화는 이 소장이 붙들고 있는 질문을 따라가며 상실을 겪는 인간의 내면을 파고든다.

 

그렇다고 영화가 죽음의 문제만을 천착하는 것은 아니다. <화곡사>의 화장장은 죽음을 둘러싼 인간의 태도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장소다. 이 소장이 부재한 화장장에서는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사람들의 욕망이 표면으로 떠오른다. 망자를 추모하는 자리지만 남겨진 이들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타인의 부재를 어떤 방식으로 자신들의 삶에 이용하는지 민낯으로 드러낸다. 화장장을 둘러싼 경제적 이해와 새로운 용도에 대한 구상, 장례 비용을 둘러싼 유족들의 실랑이는 죽음의 엄숙함과 산 사람들의 현실적인 계산이 한 공간 안에 공존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게 되는 것이다.

 

결국 화장장은 이 소장 부부가 생활의 터전으로 여겼듯이 한 좌표만으로 장소를 규정할 수 없다. 망자를 보내는 의례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그의 아내는 끼니를 준비하고 일손을 나누며 다음 일을 걱정함으로써 죽음과 식사, 이별과 생계가 공존하는 세계가 된다. 아울러 스톱모션이라는 제작 방식도 이를 뒷받침한다. 인형과 사물을 조금씩 움직여 촬영하는 작업은 모든 움직임에 시간과 손길을 요구한다. 한 프레임 안에서는 멈춰 있는 인형이 다음 프레임에서 조금씩 자리를 옮기고, 그 작은 변화들이 이어지면서 움직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 역시 고정된 모습으로 남아 있지 않는다. 이 소장이 남기고 간 화장장의 식구들, 그리고 지인들은 또 각자의 방식으로 그의 부재를 받아들이며 삶을 이어갈 것이다. 삶이란 떠난 자의 흔적을 품은 채 남겨진 시간을 살아가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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