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조의 하루: 페드라 챕터> : 새로운 감각의 챕터

By 정유나

어쩌면 우리의 삶은 이미 궤적이 정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조의 하루에 ‘페드라‘라는 사람이 등장하는 챕터 역시, 그녀가 필연적으로 통과해야만 했던 생의 한 페이지였을 테다. 오프닝을 채우는 푸른 하늘과 경쾌한 이모지들은 영화가 가진 기발한 상상력의 서막을 알린다. 

조의 엄마가 듣던 라디오에서 ‘공기의 삼위일체는 정신과 상상력, 창의력이다’는 멘트가 나온다. 그렇다면 이 영화를 감상하는 우리에게도 이들을 받아들일 새로운 감각의 기호가 필요하다. 영화는 ‘부재한 이가 나를 찾아 온다면 어떤 모습일까‘라는 심오한 궁금증을 가진 채,  미지의 빛들이 만드는 일렁임을 통해 인간의 사유로는 쉽게 환원할 수 없는 영역을 슬며시 열어젖힌다. 

조는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는 15살 소녀다. 이혼 후 거의 볼 수 없는 아버지는 그녀에겐 ‘상징적으로 죽은‘ 존재와 다름없다. 어긋난 조의 세계 위로, 영화는 오프닝에서 보여준 푸른 하늘과 구름들, 그리고 부서지는 빛줄기를 끊임없이 보여준다. 삶을 빽뺵하게 채우는 사람들과 사건, 손에 잡히는 온갖 물성들에 비하면 그것들은 아무런 무게도 없는 듯 보인다. 그러나 영화 중반을 넘어서며 이 투명하거나 가벼운 존재들은 전혀 다른 미학적 의미를 획득한다. 

조가 낮은 음성으로 읖조리는 보이스오버처럼, 영화 전체에는 상상력과 창의력의 숨결들로 가득하다. ‘숨’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들숨과 날숨에 따라 고요히 움직이는 조의 배 움직임으로만 그 존재를 증명할 뿐이다. 삶이란 이렇듯 보이지 않는 가녀린 호흡에 의해 유지된다. 특히 영화의 시작, 풀밭에 누운 조가 자신의 숨을 느끼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감독의 몽환적이고 실험적인 화면은 조의 숨을 시각화, 청각화한다.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없다‘고 단정할 수 있는가. 감각의 기표를 재구성하는 이 방식이야말로 감독이 세상을 향해 건네는 고유한 언어다.

영화가 포착하려는 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감독은 이를 하늘에 흐르는 구름으로,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과 풀잎으로 가시화한다. 빛은 공기가 있어야만 눈에 보일 수 있다. 페도라의 얼굴을 감싸는 빛, 조가 앉았던 농구장에 남은 빛, 조는 스쳐지나간 그곳을 빛들은 놓치지 않는다. 순간적인 화면 전환들과 함께 보여지는 장면들은 단순한 논리적 해독을 거부한 채, 우리의 감각 너머에 존재하는 미지의 영역을 대담하고 아름답게 형상화한다.

감독이 빈 곳을 바라보고자 하는 시도는 카메라 워킹으로도 드러난다. 마을 전체를 내려다보는 부감 쇼트 위로 조의 보이스오버가 얹힐 때, 카메라는 단순히 인물의 서사에 고립되지 않고 공간을 채우는 나무, 꽃, 바람, 찰나의 먼지까지 평등하게 안아준다. 고정된 시선으로 가두지 않고, 마치 빛이나 구름처럼 조의 동선을 부드럽게 유영한다. 그것은 조가 바라보는 세계를 함께 들여다보려는 시도이자, 그녀의 미세한 숨결까지 함께 나누려는 가장 밀착된 시선의 온기다.

이처럼 영화는 이미 정해진 트랙을 달리는 듯한 삶의 무거움 속에서,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 온 비가시적인 존재들에 눈을 돌리게 만든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호흡하게 하는 공기처럼, 손에 잡히지 않지만 세상을 감싸는 빛처럼, 영화는 삶의 빈 공간을 상상력과 창의력이라는 숨결로 차근차근 채워 넣는다. '페드라'라는 필연적 페이지를 통과하며 조가 마주한 세계는 결핍의 공간이 아니라 빛과 공기가 충만한 새로운 감각의 장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부재하는 것이 아니듯, 우리의 삶 역시 감각되는 영역 너머의 무한한 세계와 연결되어 있음을 영화는 다정하게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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