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조의 하루: 페드라 챕터> : 창문을 열어둔 심장

By 박문수

“구름이 해를 가리면, 해는 숨는 걸까, 사라지는 걸까.” 아테네의 한 고등학교 교실. 선생님이 질문을 던지지만, 조(에비타 안드리오풀루)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 대신 카메라가 창밖의 하늘을 바라본다. 파란 하늘에 교실의 네모난 형광등이 둥실 떠 있다. 투명한 유리창에 실내 조명이 비치면서, 안과 밖, 인공의 빛과 자연의 빛이 한 평면에 포개진 상이다. 무엇이 실재이고 무엇이 반영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이 이미지는 사라짐을 소멸이 아닌 ‘보이지 않음’으로 다시 생각해 보자는 영화의 제안을 미리 그려놓은 밑그림이다.

 

자클린 렌주의 두 번째 장편 〈조의 하루: 페드라 챕터〉는 아테네에 사는 한 소녀의 하루를 따라간다. 버스를 놓치고, 엄마와 다투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문득 특별한 소녀 페드라를 발견하는 하루. 이 하루가 시작하기 전에 먼저 도착한 것은 조의 꿈이다. 어두운 화면에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대신해 자막이 화면 위에 떠오르고, 그날 일어날 일을 네 가지 상징으로 예고한다. 소라 고동, 윈드 차임, 날개 달린 모자, 그리고 총알. 조는 하루 동안 이 징표들을 하나씩 마주하게 되는데, 마지막 상징이 영 불길하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암시는 시작부터 우리 손에 쥐어진다. 그러므로 영화를 보는 동안 우리는 ‘무엇이’ 일어나는가보다 ‘어떻게’ 흘러가는가에 주목하게 된다. 끝을 예감하며 바라보는 하루는 어떤 모습인가.

 

영화가 평범한 하루를 특별하게 덧칠하는 가장 중요한 안료는 빛이다. 카메라는 유리창에 미끄러지는 광채, 수면에 밝게 부서지는 산란, 찰랑거리는 조의 머리카락에 드리운 햇살을 화면의 주인공으로 세운다. 조의 꿈속에서 상징이 나타난 이후, 푸른빛이 물결치듯 화면을 채우면 형상은 지워지고 빛만 남는다. 추상이란 구체적인 사물에서 본질을 뽑아내는 일이다. 개별적인 형상을 벗겨내고 본질을 추출할수록 우리는 의미의 계보를 따라 한 단계씩 위로 올라간다. 추상화는 곧 상승의 운동이다.

 

이 개념적 상승은 카메라의 물리적 위치로 표현된다. 빈번히 등장하는 부감 쇼트는 결정적 사건 이후 제시되는 ‘승천’이라는 단어와 겹쳐진다. 조의 꿈이 끝나면 카메라는 창공을 유영하며 지상을 내려다보는데, 사운드는 조의 집 안에서 흘러나온다. 보이는 자리와 들리는 자리의 어긋남은 몸은 지상에 두고 시점만 떠오른 듯한 감각을 만든다. 그 높은 시선이 내려다보는 것은 땅에 발붙인 생명이다. 영화의 첫 이미지는 풀밭에 누워 숨을 들이쉴 때마다 오르내리는 조의 배다. 소녀의 몸에 깃든 생명은 일순간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생생하다.

 

한 소녀의 내면으로 지나치게 침잠한 나머지, 세계와의 접점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 의혹에 답하는 장면은 조가 페드라와 만나게 되는 도서관에서 나온다. 카메라는 조의 시점으로 울고 있는 소년과 입 맞추는 두 학생을 포착한다. 조 역시 그날 아침 학교 계단에서 남자친구와 키스했고, 페드라가 가창 수업시간에 ‘장미 문신’을 끝까지 부르는 동안 눈물을 흘렸다. 조의 하루에서 가장 특별하고 고유한 체험으로 보였던 두 사건을 도서관의 다른 학생들도 똑같이 겪고 있다. 조의 하루는 개별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익명의 하루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되 그 안에 유폐되지 않는 영화. 말하자면 창문을 열어둔 심장이다. 그 창문으로 스크린 바깥의 바람도 들어온다. 렌주는 2008년 12월 6일 아테네 엑사르히아에서 경찰의 총에 숨진 열다섯 살 알렉산드로스 그리고로풀로스의 죽음에서 영화가 출발했다고 밝혔다. 그 죽음은 그리스 전역의 시위로 번졌고 소년은 한 세대의 상징이 되었다. 영화는 공적인 추모에서 한 걸음 물러나서 다른 애도의 방식을 제안한다.

 

그 제안은 죽음을 바라보는 방식을 뒤집는 데서 시작한다. 조를 내려다보던 시선의 주인은 누구인가. 끝까지 보면 그 시선은 영화 속 어떤 존재의 것으로 드러나지만, 극장에 앉은 우리의 것이기도 하다. 꿈속 목소리가 시나리오처럼 하루를 예고하고 제목이 그 하루를 ‘챕터’라 부를 때, 영화는 삶이 한 편의 영화이고 우리가 그 속의 인물일 가능성을 상상해 보라고 권한다. 그리고 끝난 영화는 사라지지 않는다. 보이지 않을 뿐이다. 한 번 본 영화를 다시 꺼내어 볼 수도 있다. 거기에 사랑하는 존재가 있기 때문에.

 

그 사랑이 가장 집요하게 좇는 이는 엄마다. 제목의 주인공은 조와 페드라인데도 영화는 종종 엄마의 하루를 따라간다. 엄마는 영화에서 조에게 가장 곁을 내주지 않는 인물이지만, 춤을 추다 영적 고양에 빠진 듯한 엄마가 쓰러지면, 무용실 바닥은 쇼트의 단절 없이 학교 농구장 바닥으로 이어지고, 같은 시간 조는 연습에 집중하지 못한다. 서로 다른 장소에 있는 두 사람의 정신이 보이지 않는 선으로 이어져 있는 것만 같다. 그리하여 결말의 작은 기적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 해는 사라지지 않았다. 구름 뒤에서, 가장 멀리 있던 사람에게 빛을 보내고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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