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 비전
“살 길을 찾자! 살 길을 찾자!” 가게를 폐업하고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 태영(박송열)은 한낮에 달리며 구호를 외친다. 집에 돌아오자 소파 위에 누워 있던 주미(원향라)가 끌어안고 있던 인형을 내던진다. “어디 갔다 왔어!” 인형이 치워지자 눈에 들어오는 건 그녀의 부푼 배다. 직전에 난산으로 고생했던 부부였기 때문에 우리 마음도 덩달아 함께 부푼다. 그러나 영화는 곧 멈출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극한의 임신·출산·육아의 시간 속으로 달려 나간다.
지평선은 해가 뜨고 지는 곳이다. <사랑의 지평선 너머로>는 그 경계를 화면의 문법으로 삼아 낮은 컬러로, 밤은 흑백으로 담는다. 빛이 사라지면 사물이 색을 잃고 형체만 남듯, 밤은 단 하나의 소망만 남긴다. 아이가 잠드는 것. 아이가 잘 자야 부모도 잠들 수 있다. 지구가 해를 돌듯, 부부의 하루는 이제 아이라는 중심을 돈다.
아이는 이 영화의 중력이다. 부부의 원래 일상은 그 인력에 빨려 들어가고, 공간마저 모양을 바꾼다. 거실에는 아이가 놀 칸막이가, 방문에는 모기장이 생기고, 유아용품이 바닥을 점령한다. 부부의 위치도 안과 밖으로 갈라진다. 아내 주미는 아이를 돌보기 위해 집 안에 갇힌 신세가 된다. 영화 내에서 그녀가 밖을 나가는 장면은 거의 없고, 남편 외에 대화를 나눌 상대도 없다. 세상으로 난 유일한 창은 수익을 내려고 시작한 유튜브 채널이다.
집 밖을 나온 태영의 하루도 고달프다. 태영은 배달 노동 중에 사고를 겪는다. 그는 100만 원을 요구하며 각서와 사진까지 받아 가는 차주 앞에선 약자지만, 자전거를 타는 같은 배달 노동자 앞에선 돈을 받아낼 쪽이 된다. 분위기가 험악해질 법할 때 태영은 스마트폰에 담긴 아이의 영상을 불쑥 내민다. 스크린을 아이의 영상이 가득 메우면, 돈의 위계로 뒤엉킨 긴장이 어느새 사르르 녹아있다. 돈보다 중요한 것은 아직도 있고, 사람이 사람에게 가지는 선량함도 거기서 나온다.
이 일상 구석구석에는 렌즈가 박혀 있다. 헬멧의 블랙박스, 아이를 지켜보는 홈캠, 주미가 브이로그를 찍고 태영이 아이 영상을 담은 스마트폰. 누구나 찍고 찍히는 지금, 삶은 거미줄 같은 시선에 겹겹이 둘러싸여 있다. 영화 자체도 그렇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의 찰나를 메인 카메라가 따라잡지 못해 핸드폰 화면이 영화의 일부가 되었다. 그렇다면 영화는 이 기록들 틈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영화는 쉽게 잊힐 수도 있는 일상의 조각을 한 줄로 꿰고, 그 위에 허구를 덧입혀 오히려 진실에 다가간다. 말하자면 영화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정공법이다.
영화는 내내 유머로 가득 차 있지만 정작 부부가 웃는 장면은 드물다. 먹고사는 문제, 돈의 셈법은 영화 위에 철골처럼 얹혀 있다. 그래도 두 사람은 그 안에 갇히지 않는다. 생존이 이 영화의 뼈대라면 아이는 그 뼈대 사이로 드나드는 숨결이다. 부부는 열심히 일하고, 안간힘을 다해 아이를 재우고, 다음날 아침을 맞는 하루를 이어간다. ‘사랑의 지평선 너머’란 아마 그 고단한 반복 끝에, 한 뼘 더 자란 아이와 함께 맞는 다음 날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