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마더 메리〉 : 그저 그렇게 아름다우소서

By 정소희

 

  그리스 신화에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설득과 구애의 여신 페이토(peitho)를 동반자로 데리고 다닌다. 컴백 콘서트를 사흘 앞둔 디바 ‘마더 메리’는 무대의상이 ‘나답지 않게 느껴진다’며 오래전 결별한  드레스메이커 샘을 찾아간다. 샘의 드레스가 마더 메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어서 그렇게까지 하는 걸까? 호러영화 팬에게 A24는 약속의 이름인데 관객에게 무엇을 줄까? 어쨌거나 그들은 합의에 이른다. 마더 메리의 조건은 붉은색을 쓰지 말 것. 샘의 조건은 내가 주는 대로 입을 것. 

 

 

 

  우리의 마더 메리, 앤 해서웨이는 극 중 관객은 물론 객석의 관객이 노력하지 않아도 경탄할 수밖에 없는 팝스타의 아우라를 자연스레 발산한다. 악몽에 시달리고 고갈됐으며 연약하고 무언가에 홀린 듯하지만, 끝없이 샘에게 애걸하고 대화를 맞받아치며 세월의 간극을 따라잡는 표정연기는 감탄할 만하다. 특히 샘의 요청으로 음악 없이 신곡 안무를 출 때 점점 자신이 아닌 존재에 점령당해 끌려가고 내던져지는 인상을 주는 동작—FKA twigs의 장기이기도 한—에서 예술가가 감당하는 육체적 투신의 이면과 고통을 누구나 읽어내고 충격받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근사한 촬영과 초현실적 공간연출 외에도 〈마더 메리〉가 호러 장르로 받아들여지는 데는 의상 디자이너 샘을 연기한 미카엘라 코엘의 지분이 크다. 구부정한 자세, 번뜩이는 눈, 불온해 보이는 제스처, 고저가 느껴지지 않는 쉰 목소리는 샘이 영화 전체를 떠받칠 어떤 저주나 주술사로 받아들여지게 만든다. 샘이 오래도록 곱씹은 상처와 원망, 분노, 슬픔 어쩌면 사랑은 마더 메리의 매력에도 불구하고 그만의 지층같은 존재감을 선보인다. 특히 샘이 드레스에 관해 내뱉는 몇 가지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대사는 실현될까 봐 두려운 동시에 운명의 선포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영매로 등장한 FKA twigs도 그의 대표곡 〈pendulum〉, 〈cellophane〉, 〈striptease〉의 뉘앙스가 느껴지는 움직임, 앤 해서웨이와 추는 관능적 탱고에서 그의 장기를 확실히 보여준다. 

  영화는 때때로 과장되게 난해한 독백과 긴장감 상실로 미끄러지지만, 극의 상당한 시간을 차지하는 두 주연배우의 2인극에서 그들의 뒤엉킨 유대감과 희미한 성적 긴장감은 고립된 작업실에 몰입할 가치를 만든다.

 

 

 

  관객이 〈마더 메리〉에 거는 기대의 우선순위를 가리기 어렵지만, 범상한 음악과 의상은 죄악이다. 우리의 마더 메리는 찰리XCX ·잭 안토노프·FKA twigs가 작곡 및 프로듀싱한 매혹적인 곡들, 옷으로 캐릭터의 영혼을 보여주는 듯한 의상 디자이너 비나 다이겔러와 그로테스크한 미학의 정수를 구현하는 디자이너 아이리스 반 헤르펜의 드레스를 입는다. 오프닝 시퀀스의 과거 무대 푸티지와 현재 공연 씬은 수십 년 동안 열렬히 사랑받은 디바를 접견하는 쾌감을 준다. 그 황홀한 콘서트의 음악은 고급 음향 시스템으로 들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아이코닉한 헤일로(halo)머리장식과 관능적이면서도 고상하다는 감상을 불러 일으키는 드레스가 합당한 사람의 몸을 걸치고 움직일 때는 단순히 찬양하고 싶어지고, 단순한 연습복 차림의 움직임으로도 조금 전까지 독설을 내뱉던 상대를 압도하는 몸 앞에서는 숨을 참게 되니 큰 스크린으로 볼 가치가 충분하다. 

  〈마더 메리〉가 명확히 드러내는 스타의 신비로움이나 그를 작동하게 하는 수많은 스태프들의 창조적 작업, 창조적 영감을 주고받는 관계, 팬과의 상호 교감, 전성기 유지나 아티스트 페르소나의 굴레 같은 주제는 포착하기 쉬운 편이다. 마더 메리의 영향력이 미친 세상은 ‘콘서트, 작업실, 붉은색 초현실적인 존재의 출몰’로 비교적 간단하게 그려졌고 조명, 카메라, 소품, 제한된 공간을 한계 없이 재창조하는 세트장은 스타일리시하지 않은 것은 절대 이 영화에 발붙일 수 없다는 감독의 강한 의지가 느껴지기까지 한다. 푸른 로브를 입은 수수하고 꾸미지 않은 마더 메리는 예외다. 너무나 아름답게 고통받고 계신다.

  오로지 샘만이 마더 메리의 헤일로를 어떻게 제작해야 하는지 안다는 힌트, 투어가 임박했지만 스태프 팀과 휘황찬란한 드레스를 팽개치고 달려온 마더 메리의 조급함은 샘의 드레스만이 다를 거라는 기대를 유지시키는 원천이다. 이런 비이성적인 결정이 하우스 호러의 빗장을 걸어잠근다. 마더 메리가 원하는 것은 그저 보기에 아름다운 드레스나 무대장악력이 아니다. 스스로 무대에 서기 위한 납득이 필요한 자와 무대 위 마더 메리의 아름다움에 애증을 느끼는 자의 등골 서늘해지는 심리전은 A24가 내놓을 법하다. ​마더 메리와 샘이 공유하는 비통함, 누군가는 머리가 쭈뼛 서게 만들지만 누군가는 넋을 잃고 쳐다볼 초자연적 존재의 활용은 점차 고조되거나 엄습한다기보다는 방향을 잃거나 선회한다. 작업실에서 마더 메리와 샘의 대화를 10분 정도 덜어내고 미지의 존재가 반드시 주제와 관련된 형태여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크리쳐 디자인을 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하지만 미학적으로 아름답고 포착할 수 있는 주제가 확실하며 매력적인 인물을 제대로 연기할 배우가 있어 쉽게 시선을 잃을 영화는 아니다.

 

 

 

  〈네온 데몬〉(2016)이나 〈언더 더 스킨〉(2013)을 흥미롭게 관람했고 〈인 패브릭:레드 드레스〉(2018)에서 약간 아쉬움을 느낀 호러 마니아라면 〈마더 메리〉에게도 흥미를 느낄 듯하다. 특히 엔딩과 엔딩 크레딧은 영화 속 세상 관객 아닌 현실의 관객도 놓칠 수 없는 장엄한 순간이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하다. 그러니 관객은 그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그저 그렇게 아름다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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