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 비전

<풀문> : 내가 나를 괴롭게 만드는

By 이지섭

 

주인공 혜미(정민주)는 남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 쓰면서 자신을 곤란하게 만든다. 그 누구보다 자기주장과 고집이 세 보이지만, 그 누구보다 남들의 시선을 많이 살피기 때문에 혜미의 세상은 이미 지옥과도 같았을 것이다. 특히 이런 혜미의 시련은 집에서도 잘 드러난다.

 

영화의 초반, 혜미는 친구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 친구들은 혜미에게 언제까지 가야 하냐며 물어본다. 긴 시간을 걷고 나면 혜미의 집이 나온다. 이곳의 건물 구조가 꽤 특이하다. 수직으로 내려다보면 입 구(口) 모 양으로 생긴 건물에는 중정과 계단이 보이고, 몇몇 세대의 현관문은 바로 도로와 접해있기도 한다. 특히 은우(김태연)의 집은 건물 내부, 그리고 외부 도로 쪽으로 현관문이 총 두 개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물이 문을 닫느냐 여느냐에 따라 길이 되기도, 벽이 되기도 한 이 건물의 모습은 일종의 미궁처럼 다가온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괴물을 숨겨놓았던 미궁처럼, 혜미도 숨기고 싶은 존재를 집 안에 숨긴다. 하지만 초대한 사람은 혜미인데, 원래 그곳에 살고 있던 자들을 감춤으로써 인해 곤욕을 치르는 것도 혜미다. 친구들은 문을 열어보길 원하고, 혜미는 문을 여는 대신 스스로가 벽이 된다. 그렇게 혜미의 부모는 미궁 속 괴물이 된다.

 

 러닝타임 대부분에서 혜미를 괴롭히는 것은 타인의 시선이다. 고모가 집에 와 면박을 줘도 혜미는 즐겁게 TV를 본다. 주변 시선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혜미가 영화에서 가장 크게 무너진 부분은 가장 가까웠던 타인의 시선이 날카롭게 꽂혔을 때, 그리고 그로부터 기인한 연민이 그녀의 손에 쥐어졌을 때이다. 혜미는 남들과 다른 것이 잘못된 것으로 생각한다. 그 때문에 혜미는 느낄 필요도 없는 수치심을 느낀다. 혜미가 친구 어머니에게 받은 반찬은 혜미의 발걸음에 족쇄처럼 덜그럭거린다. 이내 혜미는 족쇄가 무거운지 걸음을 멈추고 흐느낀다. 그곳은 미궁이 아닌 밖이다. 그곳에서 혜미가 우는 모습은 한 가지 의문을 만든다. 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괴로워하는 것은 혜미 자신이고, 혜미의 부모와 은우네 가족은 즐거워 보인다. 혜미의 부모가 정말 괴물인 건가? 어쩌면 혜미가 스스로를 괴물로 만든 것은 아닐까? 혜미가 괴물이기 때문에, 그녀가 있는 공간이 미궁이 되는 것은 아닐까?

 

 영화는 은우네 가족을 통해 혜미에게 질문하고 있다. 정말 혜미의 부모님이 방구석에 숨겨놓고 소리도 내지 못하게 할 만큼 흉측한 존재인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은우와 혜미는 친해진다. 은우를 따라 혜미의 마음도 점차 달라진다. 어느 정도 마음속 대답을 정한 혜미는 이전과 다르게 행동한다. 이 또한 혜미가 사는 건물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로 바라볼 수 있다. 이전까지 혜미는 숨기기 위해 문을 닫았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 혜미는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문을 닫았다. 미궁 같았던 곳이 오히려 혜미와 은우 가족을 지킬 성이 되고, 안에 있던 존재는 괴수가 아닌 같은 편이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성안의 사람들은 갇힌 것이 아니라 소셜미디어를 통해 그들이 가지고 있던 장애를 벗어던지고 더욱 자유로워진다. 미궁이 성이 되자 혜미를 괴롭히던 시선들은 오히려 그들이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존재로 변한다.

 

사르트르는 사람들이 타인의 판단을 기준으로 자신을 판단하고, 그것에 심각할 정도로 의존하기 때문에 "지옥, 그것은 타인들이다"라고 말한다. 특히 사춘기 시절에는 남녀 막론하고 타인의 시선을 가장 많이 신경 쓸 시기다. 사람이 타인의 영향 없이 살 수 없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무엇이 나를 나답게 만드는지는 평생 고민해야 하는 지점이다. 한 사춘기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풀문>은 어느 세대보다 문화에 민감한 10대의 모습을 통해 지나치게 타인을 의식하던 과거에서,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당당한 자신을 보여주기 시작하는 현재의 사회상을 빠르고 예리하게 포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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