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응우옌푸엉마이 감독의 장편 데뷔작, 영화 <우리, 파도처럼>은 LA에 사는 16살의 AJ가 매력적인 동급생인 크리스틴을 사랑하면서 시작하는 이야기다. AJ 둥고의 동명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하고 있고, 애니메이션 최초로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개막작으로 초청받았다. AJ는 크리스틴의 마음을 얻고자 하지만, 크리스틴은 처음에 AJ에게 관심이 없다. 그런 두 사람이 친해지는 계기는 ‘서핑’이다. 서핑을 좋아하는 크리스틴이 물을 무서워하는 AJ에게 서핑을 가르치면서 둘은 급격히 사이가 가까워지고,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이야기가 아름답게 흘러간다.
하지만, 크리스틴이 서핑을 재미있게 하고 온 어느 날 밤, 다리에 극심한 통증을 느낀다. 응급실에 가게 되고, 결국 암 진단을 받게 된다. 크리스틴의 암 발병이 AJ와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까. 아니다. AJ는 사랑하는 크리스틴의 곁에 계속 머문다. 자신에게 소중한 크리스틴과 모든 순간을 함께하고 싶기 때문이다. 서핑을 좋아하는 크리스틴은 암 치료를 위해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게 된다. 죽는 것보단, 다리 한쪽을 잃는 게 낫다는 크리스틴은 곁으론 의연해 보이지만, AJ에게 다리를 잃는 게 무섭다는 진심을 내비친다. 오른쪽 다리에 의족을 차게 된 크리스틴은 여전히 서핑을 사랑하고, 씩씩하다. 크리스틴은 AJ와의 관계를 암 치료 후 가족들에게 밝히고, 크리스틴과 AJ는 나중에 아들을 낳으면 현대 서핑의 아버지, ‘듀크’로 이름을 짓기로 약속한다.
그렇게 그들의 시간을 흘러간다. 하지만, 시간은 종국엔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크리스틴의 암이 재발한다. 영화 <우리, 파도처럼>에서 가장 놀라운 씬은 크리스틴이 다시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로 옮겨진 후, AJ가 중환자실에 면회를 들어가는 장면이었다. 크리스틴의 몸에 여러 개의 카테터가 끼워져 있었다. 응우옌푸엉마이 감독은 중환자실에 있는 크리스틴을 보는 AJ의 마음을 시각적으로 절묘하게 표현했다. AJ가 중환자실에 들어가자, 수술 도구들이 공중으로 떠오르고 크리스틴이 바다에 수장되는 것으로 묘사했다. 이 씬은 크리스틴을 바라보는 AJ의 절망감과 크리스틴의 다가올 불행한 미래를 암시했다. 실사 극영화였다면, CG를 써야 했을 이 씬은 애니메이션의 미덕을 잘 보여준다.
이 애니메이션의 주요 소재인 ‘서핑’도 흥미롭다. 애니메이션 초반에 크리스틴이 AJ에게 서핑의 역사를 설명한다. 오래전부터 하와이에서 원주민들이 서핑을 탔는데, 선교사들이 서핑을 못 타게 했다고 한다. 그런데 캘리포니아에 듀크라는 인물이 나타나면서, 서핑이 보편화 되었다고 한다. 크리스틴의 이런 말 속에서 서핑을 통해 정복자들의 억압과 인종차별의 역사도 얼핏 비춘다. 애니메이션에서 크리스틴은 남미계이고, AJ는 아시아계라서 크리스틴의 말에 더욱 힘이 실린다. 영화 <우리, 파도처럼>은 슬픔이 밀려오면, 파도를 탄다는 AJ를 보면서 서핑이 하고 싶어지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