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 비전
지난 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절해고도>을 선보였던 김미영 감독은 다시 한번 벤다이어그램을 그려 주인공 혜주(프로그램 노트에는 '해주'로, 영문 자막은 'hye-joo' 로 쓰여있는데 들리는대로 표기해본다. 이유하분)를 중심에 놓고 등장인물들의 교집합을 파악해봐야 할 영화 <모종의 탐정>을 들고 다시 BIFF로 돌아왔다. 이 영화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글로 설명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 같고 제목이 가장 큰 힌트일 거 같은 생각이 든다. 말 그대로 혜주와 함께 ‘모종’을 같이 탐험하고 추리하는 영화다. 그 모종이 뭔지는, 어떤 방법론으로 접근할 것인가 하는 것은 모두 관객 개개인에게 열려있다.
하지만 몇 가지는 이야기할 수 있을 거 같다. 우선 연극에 대한 헌사가 느껴진다는 것. 지금은 소설가, 작가인 혜주의 과거는 연극이랑 깊이 연관되어 있고 이 영화는 연극과 연극인에 대한 깊은 헌사가 배어있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짧은 푸티지가 삽입된 자동차 안 신들은 연극에 대한 애정이 무지개빛 컬러로 스며든 걸 느끼는 사랑스러운 순간이었음을 고백해본다. 또한 이 영화의 이상한, 느낌이 다른 B&W 화면은 흑백 고전영화를 애정하는 입장에서 양가적인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컬러감, 질감은 전통과 미학적 측면에서는 실패로 다가오지만 혜주의 하루, 지금의 혜주와 과거의 혜주를 사람들, 인연들을 통해 짧게 여행시키며 지난 기억과 감정에 대한 새로운 추리와 탐험을 하는데 있어서는 기능적으로 일조했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는 ‘순간’을 환기시킨다는 점인데... 혜주의 트라우마, 자기 방어를 위한 기억의 조작은 스포 방지를 위해 차지하더라도 다른 순간의 기억-그게 2002년 월드컵 미국전이라는 사실이 이채롭다. 혜주의 대사는 틀린 것이 없다, 정말 거리에 차도 다니지 않고 대한민국이 멈춘 느낌이었으니깐. 하지만 30대 이상만 기억할 2002년 월드컵, 그것도 애국가에도 나온 대한민국 성인 남자 축구대표팀을 전대미문의 4강으로 이끈 (그때는 영웅이었지만 세월이 지나 2026년 월드컵을 치루며 이젠 이름조차 언급이 두려운) 홍명보의 마지막 승부차기 골 순간이나 안정환의 16강 이탈리아전 (이젠 사라진 제도인) 연장 골든골 순간이 아니라 미국전이라니... 이렇게나 결정적 순간은 개인에 따라 에브리씽, 에브리웨어(27회.다니엘 콴, 다니엘 샤이너트), 에브리타임(31회.산드라 볼러) 다를 수 있다는 걸 다시 확인시킨다.
이 영화는 이러한 파편적인 감정들을 그러모으며 마지막 장면에 이르게 되는데...그 장면 하나가 스포일러가 될까봐 무척이나 조심스럽지만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거 같다. 분명 자신만의 탐정질 후 집으로 돌아와 마지막 장면에 서있는 혜주는 출판사를 운영하는 것으로 보이는 후배를 만나던 오프닝 시퀀스의 혜주랑은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건 분명해보인다. 하지만 그게 추리소설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일까. 정성스레 연필을 깎고 맙소사! 노트북이 아닌 정말 노트를 펼치긴 하지만 거기까지다. 집필을 시작하는 행위는 없다. 김미영 감독이 가진 창작의 명확한 태도도 거기까지인 것처럼 보인다. 이제 이야기를, 꼭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다른 무언가라도 써내려가야 하는 건 바로 관객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다 키우고 모든게 자리잡혀 분무기로 물 뿌려주고 잎이나 정성스레 닦아주면 되는 분재나 난보단 묘목(모種 또는 某種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을 스크린을 통해 선물해주는 것이다. 잘 키워 그 어떤 분재나 난보다 아끼고 오래 기억되는 작품으로 만드는 것도, 금방 시들어 사그라지게 하는 것도 모두 관객 책임인 영화를 지향하시는게 아닐까 싶다. 다만 이렇게 두서없는 글을 끄적이는 소양(토양)을 가진 관객 입장에서 바라는 것은 조금 더 키워서, 조금 더 건강하고, 키우기 쉬운 모종을 선물받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능력이 부족해 아직은 이 영화가 전하는 것들을 힘들게 그러모아도 손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들이 더 많은 느낌, 나무로 키워내기가 어려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 없다.
마지막으로 이유하 배우에 대한 언급을 빼먹을 순 없을 거 같다. 첫 등장부터 작년 비전 초청작 <우아한 시체>의 민주가 떠오른 아주 좋은 마스크를 가진 배우가 이번에는 민주처럼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면서도 처음에 언급했지만 주인공을 넘어 벤다이어그램의 중심이 되는 역할-혜주 롤을 훌륭히 감당해낼 수 있는 배우로서 또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이 반갑다 . 김미영 감독의 <절해고도>, 이유하 배우가 나왔던 <올 겨울에 찍을 영화> 모두 5년 전 BIFF 비전 부분에 초청되었던 작품이었다. 이번 경우는 아니더라도 영화제가 만들어내는 네트워킹이 감독과 배우 모두에게 도움과 성장이 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