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세계적인 팝스타 마더 메리(앤 해서웨이)는 투어 도중 옛 친구 샘(미카엘라 코얼)을 찾아가 드레스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이어지는 두 사람의 대화는 과거의 사건, 해묵은 감정, 관계의 균열을 파헤친다. 로워리는 한 인터뷰에서 대사로만 이루어진 각본을 강렬한 시각적 경험으로 옮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말대로 이 영화의 성취는 은유로 넘치는 대사가 아니라 이미지를 실어나르는 육체에 있다.
회화에서 성모 마리아는 전통적으로 붉은 옷 위에 푸른 외투를 걸친 모습으로 그려진다. 붉은색은 인간의 육체와 고통을, 푸른색은 천상의 순결과 신성을 상징하고, 두 색의 중첩은 성과 속이 하나의 육체에 공존한다는 역설을 드러낸다. 도상이란 결국 보는 이의 믿음이 부여한 이미지다. 후광 같은 머리 장식을 쓴 메리는 수만 명의 시선이 빚은 현대의 성모이고, 그 이미지를 설계한 사람은 의상 디자이너 샘이다.
샘은 창조자이자 자신이 만든 우상에 사로잡힌 신도다. 해서웨이가 무너질 듯한 자세와 불안한 표정으로 무대 밑의 메리를 연기한다면, 코얼은 흔들림 없는 목소리와 거의 깜빡이지 않는 눈으로 상대방을 장악하는 샘을 연기한다. 메리는 '나' 같은 드레스를 원하면서도 그 '나'를 스스로 설명하지 못한다. 영감이 고갈된 샘 역시 메리의 몸 없이는 드레스를 완성하지 못한다. 서로를 필요로 하며 소진시키는 두 사람은 배우와 감독 같은 공동창작의 관계처럼 보인다. 나아가 좁은 공간에서 2인무처럼 움직이는 블로킹이 만드는 두 사람의 관계는 한 예술가 안에서 대립하는 자아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관념적인 대립 밑에서 신음하는 것은 구체적인 육체다. 음악 없이 메리가 춤을 추는 장면에서, 바닥을 기고 경련하는 몸은 무대 위의 완벽한 성상과 달리 보이지 않는 힘에 사로잡힌 신체처럼 보인다. 공연의 시작과 끝을 이어 붙여 무대 뒤 계단만을 끝없이 오르내리는 롱테이크 장면도 그렇다. 투어의 시간을 하나의 쇼트에 압축한 이 장면은 이미지를 유지하는 작업을 떠받치는 것이 인간의 육체임을 드러낸다.
샘은 옷을 만드는 일을 '감정의 체화'라 부른다. 보이지 않는 감정은 드레스라는 물질적 이미지로 재단되는 의례를 거친다. 여기서 육신은 정신의 감옥이 아니라 영적 세계로 통하는 문이며, 영화는 글자 그대로 해방의 이미지를 향해 나아간다. 이야기는 샘의 헛간에서 보내는 하루 동안 벌어지지만, 뒤섞이는 플래시백과 환상은 수만 명이 들어찬 스타디움과 10년의 세월을 자유롭게 오간다. 어두운 공간에 몸이 갇혀 있지만 정신은 고양되는 이 감각은, 불 꺼진 극장에서 스크린을 바라보는 영화 체험과 닿아있다. <마더 메리>는 결국 이미지를 보는 우리 역시 하나의 몸으로 그 자리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