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그날 밤, 클라리사에게> : 시간의 전언

By 배혜경

​여러 차례 변주되어 온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이 놀라운 방식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속하기도 포착하기도 하는 시공간의 비밀이 현대적 감각으로 재현되는데, 한 세기 전 런던의 상류층 부인 클라리사는 나이지리아 해안도시 라고스의 재력가 부인 클라리사로 옮겨 온다. 중년의 클라리사는 고급 저택에서 파티를 준비하고 있다. 메이드를 시켜 그릇을 닦고 집사를 시켜 가구를 재비치하고 거리에 나가 상점 주인을 대하는 태도에도 무례나 오만은 느껴지지 않는다. 교양 있는 그녀의 의식을 따라가며 관객은 교차하는 시간의 흐름을 타고 상실한 것만 같은 아름다운 날들의 우정과 사랑을 복기한다. 

 

삶은 각자의 삶, 공존하는 삶이라 시대의 암울에서 조금은 떨어져 있는 듯 보이는 네 명의 주인공들. 때로 냉소적으로 때로 열정적으로 꿈을 말하고 문학을 논하고 머뭇대며 다가가는 첫사랑의 일렁임을 연출할 때, 눈부시게 한가해 보이는 사건들이 무심한 풍경 속에 자리할 때 그 땅에서는 오랜 식민 역사와 아체베의 문학이 대변하는 탈식민의 문제가 들끓는다. 독립 후에도 여전한 내전으로 죽임과 죽음이 일상인 장면들이 스친다. 8년 동안이나 보코하람과 싸워왔다고 소리지르는 평범한 남자의 기막힌 얼굴에 쌍둥이 형제 에시리 감독의 염려와 간절함이 엿보인다. 평온은 가장한 얼굴이 아니라 두 얼굴을 가진 우리 삶의 이면이다. 우리를 덮치는 죽음은 그야말로 느닷없고 거침없음을 영화는 강렬한 충격으로 '보여'준다. 그 와중에 이슬람 기도 시간을 알리는 종이 자주 울리고 우리의 의식을 때리는 것처럼 평화를 기도하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에 숙연해지고 만다.  

 

영화의 번역 제목을 초반에 남자의 목소리로 듣게 된다. 신사가 된 이 남자는 어딘지 초조하고 열패감에 사로잡혀 있다. 군데군데 드러나는 이들 공동체의 관습이 거추장스러워 보이지만 보수적인 어른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대체로 예의를 벗어나지 않는 이들 틈에서 이 남자 또한 자신의 감정을 누르고 있다. 영화는 클라리사의 의식을 따라가지만 또한 이 남자의 의식을 따라간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의식을 따라간다. 인물들의 내면 의식을 따라가며 그들의 삶과 그들이 속한 사회 공동체의 모습을 세밀히 묘사하는 데 <댈러웨이 부인>은 형식으로서 적절하고 영리한 차용이다. 


현재에 되살아나는 과거는 어느 정도 애도와 애정의 이중감정을 몰고온다. 꿈과 사랑의 상실감을 품고 살아온 중년의 남자와 그즈음의 여자, 그 모든 중층의 감정과 내외면의 서늘한 풍경을 기억하는 것은 언제나 시간이다. 시간은 이 모든 걸 우주의 먼지처럼 저장한다. 그것은 운명의 다른 이름, 세계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를 사랑하는 것 또한 시간이다. 우리가 그 손을 놓지 않는 한. 영원히 되살아나는 것들 앞에서 눈물과 웃음의 파티를 즐기는 우리. 그날 밤, 클라리사가 마련한 파티에 모여든 과거와 현재의 조금은 달라진 우정과 사랑, 꿈과 현실의 종합은 노래하며 춤추는 "해피 데이"로 후렴구를 이룬다. 우아한 클라리사의 적당히 주름진 얼굴과 희미한 미소가 클로즈업될 때 그것은 우리 삶의 빛과 어둠 그 모든 걸 포용하고 조용히 바라볼 줄 아는 성숙한 이가 우리 생에 전하는 위로가 된다. 삶은 즐거움이어라. 그러나 어머니 강을 잊지 말 것. <그날 밤, 클라리사에게>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돌고돌아서 온 시간이 보내는 사랑의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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