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영화 <아버지의 방>에서 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하는 사토미(아오이 유우)는 죽은 아버지 유이치(잇세 오가타)가 생전에 보낸 열쇠를 우편으로 받는다. 사토미는 그 우편을 계기로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영화가 다루는 주요한 소재 중에는 다도, 시가 있다. 이 두 소재의 공통점을 꼽자면 모두 진정으로 즐기기 위해서는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영화는 이 두 가지 소재를 모두 소중하게 다루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사토미가 영상을 보며 다도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다도는 유이치의 취미이며, 그가 남긴 유품 중에는 다완이 있다. 사토미는 다완의 출처를 찾아가고, 그곳에서 ‘에어 다도’에 대해 듣는다. 이 에어 다도의 회상 장면은 카메라가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앉은 유이치와 그 옆에 앉은 도자기 그릇 상점 주인을 전체적으로 보여주며 시작한다. 유이치는 차도, 다도 도구도 없이 그저 다완 하나만 가지고 다도를 한다. 없는 주전자를 들어 허공에서 다완에 물을 따른다. 지나가던 사람이 멈추어 서서 보고, 주위의 소음이 들려도 유이치는 다도에만 집중한다. 카메라 역시 중간 과정을 건너뛰지 않고 그런 유이치의 행동을 전부 보여준다. 처음에 상점 주인은 그런 유이치를 이상하다는 듯 보고 주위의 시선을 의식한다. 멀리서 둘을 비추던 카메라는 다도가 진행됨에 따라 유이치에게 다가간다. 유이치가 차를 섞고, 잔을 돌리고, 다완을 건네는 장면을 가까이서 비춘다. 상점 주인은 텅 빈 다완을 받아 들어 마신다. 주변의 모든 소음은 어느 순간 사라져 있다. 상점 주인도 유이치의 다도에 몰입한 것처럼 느껴진다. 아무것도 없는 차를 마시고 나자 비로소 주변의 소음이 돌아온다. 영화는 내용물이 없는 다도도 시간을 들여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다도는 영화 전반에 걸쳐 여러 번 나온다. 절차가 길다고 느껴질 때도 있지만, 카메라는 최대한 그 절차들을 보여주려고 한다.
유이치는 시를 쓴다. 영화에서는 유이치가 쓴 시를 내레이션으로 들려준다. 시를 낭독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시가 노래로 불리기도 했기에 낭독은 시의 운율을 효과적으로 들려주는 일이다. 시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빠르게 읽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시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멈추어 서서 시를 읽고, 그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 시간을 들여 낭독까지 하면 더 좋다. 영화는 유이치가 쓴 시를 그저 화면에 글자로 보여주기보다, 걷는 유이치, 다도하는 유이치, 차를 마시는 유이치를 보여주며 그의 목소리로 낭독해 준다. 유이치의 목소리로 읊어지는 시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편안한 속도로 들려오며, 유이치의 상황이나 행동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영화는 시를 낭독하고, 시의 일부 구절에 호응하는 이미지를 보여주며 보는 이들이 시를 충분히 경험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런 시간을 들이는 일처럼, 카메라도 분주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카메라는 자주 멈추어 선다. 멀리서 걸어오는 인물을 기다리기도 하고, 인물의 동선이나 행동을 잘게잘게 쪼개기보다 통으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1초보다도 짧은 시간에 컷 전환이 되는 TV 드라마와는 다르게, 호흡이 비교적 긴 편이다. 다양한 구도가 시시각각 나열되기보다 일정한 구도를 반복하거나 한 장면을 길게 비추는 카메라의 느긋하고도 단정한 태도는 유이치를 닮아 있다. 음식을 그릇에 담을 때 그의 서두르지 않는 움직임처럼, 사토미와 그녀의 어머니가 여러 소리를 내며 분주하게 집을 나설 때 식탁에 조용히 앉아 있는 그처럼 말이다. 좋아하는 것을 오래 바라보고 좋아하는 사람을 기다리듯, 급하지 않게 보여주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다도와 시에 애정을 가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만으로 즉각적인 자극을 얻기 쉬운 일상에서도 영화는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에 대해 집중한다. 그것들은 과거의 죽어버린 취미이자 유물로만 남은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는 그러한 소재를 진지한 태도로, 또 존중하는 마음으로 담아낸다. 잊혀가는 듯한 가치를 조명해 내는 문법이 효과적이며, 그러한 태도는 보는 이들 역시 감응시키는 힘이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