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파노라마라는 노장 감독들이 침묵을 깨고 발표한 3편의 영화로 이루어진다. 이 작품들은 그들의 영화인생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자 90년대에 대한 해석이기도 하다. 그 첫 자리에, 한국영화의 거목 김수용의 109번째 작품 <침향>이 선다.
김수용은 <침향>에서 젊은 날의 고통과 성장이라는 고전적인 주제로 회귀한다. 군대를 제대한 찬우는 입대 전에 만났던 선희의 유서를 받고 여행에 나선다. 유골을 들고 길 위에선 그는 그녀와의 추억을 회상하고, 천도제를 위해 도착한 절 근처의 여인숙에서 비밀을 간직한 여인 진경을 만난다. 만남과 이별을 지나 성장한 자신을 발견하는 찬우의 여정은 세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을 젊은 날의 통과제의다. 정일성의 촬영이 그 의식에 낭만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안개>, <화려한 외출>과 같은 작품을 통해 현대인의 내면과 방황을 포착했던 김수용에게 청춘의 성장과정은 익숙한 주제다. 영화는 구효서의 운작을 토대로 삼으면서도 김수용 특유의 인물들을 통해 자신의 색깔을 유지한다. 찬우가 오래된 고목을 지나며 인간의 향기를 깨닫는 순간 <침향>은 불안하게 부유하는 청춘을 꼬집는다. 하지만 이것은 설교가 아니라 노희한 감독의 웃음 띤 충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