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중래는 시나리오가 잘 안 써지자 후배 창욱, 창욱의 여자친구 문숙과 바닷가로 여행을 떠나왔다. 중래는 음악을 전공한 문숙을 은근히 유혹하고 문숙도 호감을 보인다. 창욱 몰래 문숙과 동침한 중래는 다음날 아침 굳은 얼굴로 서울로 돌아온다. 이틀 뒤 다시 바닷가에 온 중래는 또 다른 여인을 만나 하룻밤을 보내는데, 문숙이 그것을 지켜보고 있다. 홍상수의 영화에 나오는 대사들과 동작들과 소품들은 쉽게 의미를 드러내지 않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훨씬 풍요롭고 견고한 서사를 만들어낸다. 홍상수의 일곱 번째 작품인 [해변의 여인]은 홍상수의 영화 가운데 가장 친절하고 따뜻한 영화다. 하지만 여기엔 홍상수의 새로운 시도가 담겨 있다. 인물들은 욕망의 폐쇄회로를 순환하기를 그치고, 그를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홍상수의 전작들에서 보기 힘들었던 그 안간힘은 의도하지 않은 계기로 성공한다. 인간의 욕망은 대상을 벗어나지만 시간과 서사는 불가사의하게 진전한다. [해변의 여인]은 홍상수의 가장 야심적인 작품이다. (허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