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마주하지 않고 덮어둔 상처는 그저 잠시 시간을 멈춰둔 것에 불과하다. 혹은 자신도 모르는 새 천천히 곯아 들어가는 걸지도 모른다. <비밀의 정원>은 10년 전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가 비밀로 묻어둔 과거를 다시 마주보는 이야기다. 과거를 잊고 평온한 결혼생활을 꾸려가던 은주는 어느 날 경찰서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는다. 자신을 성폭행한 범인이 잡혔다는 소식은 부부의 삶을 뒤흔들고 일상을 무너트린다. 박선주 감독은 자신의 단편 <미열>을 확장시킨 이 영화에서 사건 이후의 삶과 회복의 과정을 담담하게 따라간다. 일체의 자극적이거나 직접적인 묘사가 없음에도 아픔은 생생하게 다가온다. 인물들의 반응과 사건 주변의 파장에 집중한 세심한 연출은 상처가 진짜 아무는 과정, 그 고된 시간을 솔직하게 포착한다. 전반적으로 담백하지만 잔잔한 수면 아래 휘몰아치는 감정의 격류 또한 놓치지 않는 점이 미덥다.(정한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