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사회를 디스토피아로 재현하는 것은 SF장르의 첫 번째 공식처럼 따분한 것이지만 이제껏 [애플시드]만큼 많이 나아간 영화는 없었다. [애플시드]에서 인간은 궁극적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절멸시킬지 말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존재다. 인간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인간이라는 모티브에서 출발해 이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인종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파격적인 결말로 끝나는 이 영화는 애니메이션 테크닉의 최첨단 스타일만큼이나 인상적인 주제를 그려낸다. 매니아팬을 거느린 같은 제목의 만화를 원작으로, 3D CG 애니메이션의 공간에 등장인물만 2D 셀로 그려진 이 영화는 익숙하면서도 새롭다. 역동적인 카메라 움직임을 보장하는 3D CG에, 2D로 그려졌지만 움직임만은 거의 실사에 가까울 정도로 정교한 등장인물들을 보는 것은 거의 전율에 가까운 시각적 흥분을 안겨주는데 그 익숙함 위에 여러 매체를 동시에 플레이한 듯한 시각적 경험이 겹쳐진다. 액션장면은 컴퓨터 게임에서, 세트는 SF영화에서, 캐릭터는 만화에서, 심지어 로봇 모델은 장난감에서 불러온 듯한 것이다. 이 조합이 놀랍도록 조화롭다. 이조차도 인간과 바이오로이드(일종의 사이보그) 커플의 탄생을 지지하게 만드는 이 영화의 독특한 세계관보다는 덜 놀라운 것이겠지만. 지금 저패니메이션은 아찔한 속도로 진보하는 중이다. 강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