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과의 관계를 고집스럽게 거부하는 고귀한 신분의 본슬레는 오랜 시간 경찰생활을 해왔지만 딱히 타인에 대한 연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집에 하층계급 비하리 출신의 젊은 여인과 어린 소년이 이사를 오고 축제가 있던 날 방에 혼자 쓰러진 본슬레를 소년이 발견해 목숨을 구하게 되면서 관계에도 변화가 생긴다. 처음으로 건네는 고맙다는 말 그리고 함께 한다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그에게 조금씩 스며든 이웃은 어느덧 우리가 되어간다. 하지만 계급 내 질서를 흔드는 그들의 평등한 관계는 권력을 탐하는 이에게는 불안의 대상이 되고, 여인은 강간과 폭력으로 계급간의 간극의 고통을 받게 된다. 신 앞에 평등하길 바라지만 결국 본슬레는 폭력으로 그를 응징하면서 계급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다. 매일 그들은 신에게 기도한다. 신 앞에 미물임을 힘주어 말하면서도 신에게 가까워지려 바벨탑을 쌓는다. 계급이라는 굴레 안에서 신에 가까워지려는 사람들, 그리고 철저한 계급아래에서 늘 위로 향해 있는 권력을 갈망하는 자들의 폭력은 그들 스스로가 만든 바벨탑처럼 불안정하고 위태로우며 한 순간 무너져내릴 수 있는 모래성과도 같다. 계급과 권력 그 안의 폭력에 무너지는 본슬레를 통해 우리 안의 계급적 관계와 폭력에 대해 고찰해 본다. (정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