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한다는 건 알지만, 한 번도 본 적 없는 영화들. 90년대 예술 영화는 우리에게 유령과도 같았다'고 영화 속 인물들은 말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1990년대에서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태국의 아트하우스 영화와 시네필 형성에 영향을 미친 한 남성의 행적을 추적한다. 반 비디오 샵(Van VDO)을 운영했던 이 남성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태국에서 예술영화를 접할 수 없었던 때, 해적판 비디오를 판매하던 이 가게는 예술영화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이곳을 드나들던 단골들과 이곳에서 일했던 종업원들은 이제 태국의 중요한 감독, 시나리오 작가, 평론가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곳을 통해서 왕가위와 차이밍량, 그리고 트뤼포와 고다르의 영화를 접할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해적판 영화를 유통하는 가게가 역설적으로 오늘날 태국에서 예술영화 시장을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에 대해 영화 속 인물들은 다양한 감정과 의견들을 피력한다. 이제 영화를 관람하는 문화는 변했고, 디지털화된 세계 속에서 예술 영화에 대한 접근은 이전보다 손쉬워졌다. 이 다큐멘터리는 예술 영화를 찾아보기 어려웠던 그 시절, 문화원과 비디오테크를 전전하며 영화를 봤던 시네필 문화를 애잔하게 향수하게 한다. (홍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