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이혼으로 가슴에 구멍이 난 아이 다준과 그런 다준을 돌봐주고 버는 돈을 집에 갖다줘야 하는 이펜은 서로가 지긋지긋하다. 9살의 다준은 꿈에도 그리는 엄마 대신 뚱땡이 사촌누나 얼굴만 봐야 하는게 싫고, 새처럼 자유로워야 하는 16살 이펜은 그런 다준을 책임져야 하는 자신의 신세가 싫다. 만나기만 하면 서로 물고 뜯고 으르렁거리는 다준과 이펜은 사실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들이다. 폭식과 기행으로 죄책감과 외로움을 달래려는 아이들. 급기야 납치극을 꾸며 부모에게 몸값을 요구하자는 엉뚱한 계획을 세운다. <곰의 포옹>은 급변하는 대만의 현대가 아이들에게 남긴 치명적인 상처를 들여다보고 그것을 어루만지려는 영화다. 어쩌면 아이들은 너무 일찍 어른 취급을 당하는 것은 아닐까? 어른들의 이기적인 욕망이 아이들의 욕구보다 더 커도 괜찮은 걸까? 왕 샤우디 감독의 섬세하고 사려 깊은 시선은 아이들의 마음을 투명하게 드러내면서 어른들에게 나즈막하게, 그러나 엄중한 목소리로 책임을 묻는다. 그러나 그 비판이 매섭지는 않다. 현대 가정의 반짝이는 윤기는 희생을 대가로 하고 그것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이 치르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곰인형의 포옹을 제안하는 마지막 시퀀스가 따뜻하지만 비관적인 것도 그 때문이다. (강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