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체취가 비릿한 바다 냄새에 실려오고 있다. 해변가 파란 대문의 여인숙에 진아가 둥지를 튼다. 주인집 딸 혜미는 손님에게 몸을 파는 그녀를 혐오한다. 이렇게 가족들과 진아의 관계는 그녀를 괴롭히는 깡패와 변태손님 만큼이나 어긋나있다. 여관 주인 아저씨가 그녀를 쓰러뜨리는가 하면, 그의 고등학생 아들이 돈을 들고 찾아온다. 그 공간속으로 조여드는 가학적인 감성과 그로부터 방출되는 화면의 흡인력. 그 상반된 감정이 버겁다. 혜미의 혐오감은 남자친구의 방문을 계기로 더욱 커진다. 그러나 진아의 세계를 이해하게된 혜미는 점차 그녀와 성에 대한 거부감을 녹여나간다. 자살을 기도하는 진아를 따뜻하게 보살피면서 둘 사이의 우정이 자란다. 그리고 눈 내리는 어느 날, 혜미는 아픈 진아를 대신해 낯선 남자에게 몸을 맡긴다. 교감의 순수함에 지금까지 억눌린 감정이 정화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성의 교환을 통한 여성간의 화해는 급진성과 과격함의 경계를 위태로이 걸으며 논란의 여지를 남긴다. 이야기를 몰고 가는 감독의 연출이 힘차지만, 그의 동물적 남성상에서 우리시대의 맨 얼굴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무겁다. 바다의 시린 서러움에 잡아낸 서정민의 촬영과, 창녀와 소녀의 이미지를 매력적으로 소화한 이지은의 연기는 기대 이상의 수확이다.(권용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