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해체의 산고를 겪어야하는 한국 사회의 모순은 두 인물간의 모습을 통해 분명하게 보여진다. 갓군대를 제대한 막동의 꿈은 과거와 같이 가족들이 함께 모여 사는 것이다. 흩어진 가족들은 생계에 급급하다. 그래서 막동은 많은 돈을 벌고 싶어 한다. 배태곤은 깡패 두목이다. 그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뭐든지 이용한다. 두 인물은 다른 위치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닮아 있다. 일그러진 그들의 자화상은 한국 사회의 양극단이기 때문이다. 마땅히 취직할 곳 없는 막동,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자신의 권력을 획득한 배태곤. 거기다 밤기차를 타는 것이 유일한 취미인 배태곤의 애인 미애. 이들이 이루고자 하는 꿈은 부정과 부패로 얼룩져있다. 필름 누아르의 비장미가 담긴 마지막 장면에서의 배태곤이 저지른 배신 행위는 영웅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치졸한 생존의 논리를 보여준다. 그들이 벌이는 먹이사슬은 사회의 전반에 만연되어 있는 우리의 치부이다. 하지만 가족의 긴장관계는 나무처럼 길고도 지루한 세월을 견디는 미덕을 보여준다. 가족이란 가지는 새삼스런 감동을 자아낸다. 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은 단지 가지를 흔들 뿐, 밑둥은 점점 크고 둥글어진다. (이용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