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스위스 국경 근처의 산에 은둔하며 살고 있는 루이 트레버, 자신은 건강하다고 느끼지만, 사실 그의 심상은 쇠약해진 상태이다. 절실하게 기다려온 심장이식수술을 받은 후, 루이는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는 남태평양의 해안으로 여행을 떠난다. 자신의 현재 속에서 과거와 화해하고 그동안 시달려온 부채감을 덜고자 하는 루이. 그는 이제 자신의 삶을 가로막던 장애를 벗어던지고 강요된 삶이 아닌, 후회 없는 삶을 살고자 한다. 철학자 장-뤽 낭시의 저서에 실린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개입자>는 단순하고 직접적인 내러티브와는 거리가 멀다. 클레어 드니 감독은 대사와 관습적인 영화 구조보다는 이미지와 사운드를 통해 말하는 방식을 택한다. 영화는 관객에게 단편, 조각, 자투리를 던지며 파편적인 이야기를 스스로 조합하도록 유도한다. 인간조건을 날카롭게 탐구하는 클레어 드니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개입자>는 그녀의 영화 중 가장 양식적인 아방가르드이자 순수영화의 한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