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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긴 머리 그녀들의 밤외출>:지금, 바로, 여기

By 이승재

   인간의 역사는 진보의 역사인가? 많은 논쟁거리가 있지만 적어도 인권문제에 있어서 만은 인간의 역사는 진보의 역사라 믿는다. 인종, 여성, 장애인 문제 등 여전히 남은 과제가 산적해 있지만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권이 개선되어 온 것 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이번 세대와 앞선 세대를 통하여 사회적으로 보다 활발하게 논의되고 논쟁되어 온 문제는 성소수자 문제가 아닌가 싶다. 동성애와 트랜스젠더 등 없는 듯 하였던 그들의 문제가 언론과 영화 등 여러 매체를 통해 공론의 장으로 나왔고 그들의 인권문제도 사회문제로 다루어지게 되었다. 내가 젠더 문제에 무지하다고는 하나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통틀어 그들은 항상 존재하였다는 사실만큼은 뚜렷이 알고 있다.

 

   필리핀 마닐라의 밤거리 성전환 수술을 받지 않은 여장 남자 튜스데이”, “아만다”, “바비”, 마사지업소의 종업원인 그녀들은 포주의 안내를 받으며 밤거리로 나선다. 영화는 이 세 명의 트렌스젠더가 겪는 세 개의 에피소드를 70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에 담아낸다밤거리 곳곳에 도사린 위험은 온전히 그녀들의 몫이다. 각자 제 몫의 욕망이 환락의 거리와 만나서 빚어내는 세 꼭지의 이야기에서 제라르도 칼라구이감독은 우선 세 명의 여성이 유흥가의 밤거리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트랜스잰더들의 어두운 현실을 전제로 하고, 한 명의 여성에게는 사랑의 갈망을, 또 한 명의 여성에게는 한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는 사람으로서의 존중과 인정욕구를, 나머지 한 명의 여성에게는 더 큰 성공을 위해 더 큰 위험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을 덧입힌다. 매춘, 마약 등의 사회적 문제와 성소수자인 트랜스젠더들의 가파른 삶이 어울려 출구 없는 삶을 살아가는 그들 이야기를 과장되지 않으나 분명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낸 영화다.

 

   모든 역사가 현대물이듯 모든 영화는 시대극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긴 머리 그녀들의 밤외출>은 지금, 바로 여기, 이 순간과 깊이 공감하고 공명하는 영화이다. 감독은 각각의 에피소드를 현재진행형으로 열어둔 채 끝을 맺는다. “튜스데이는 호텔방에서 사랑을 나누는 중이고, 술에 취한 아만다는 고향집 마당 구석에 쓰러져있고, “바비는 마약을 배달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는 중이다. 감독은 굳이 사건의 해결을 위해 영화를 더 밀고 나아가지 않는다. 그런데 굳이 그래야 할 이유는 없는 듯 하다. 그것보다 지금 더 절실한 것은 트랜스젠더들이 처한 사회적 환경과 사회적 관계맺기에서 오는 혼돈과 혼란을 정확히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리뷰를 여기까지 쓰고 나는 두 번째 에피소드인 아만다의 고향집 마당으로 돌아간다. 마닐라 시내에서 산 빨간 원피스를 입고 고교시절 연인이었던 친구 딸의 돌잔치에 대모의 자격으로 참석하여 옛친구들과 어울린 술자리에서 강제키스를 당하고, 집으로 돌아와 무너지듯 마당 구석에 쓰러진 여자이자 남자이고, “아만다이자 아만틸로(? 아만다의 옛이름)”인 그녀가 입고 있는 붉은색 원피스, 원색의 그 붉은색은 좀 채 탈색될 것 같지 않아 걱정이다. 걱정인 동시에 공감이며, 내 걱정은 또 동시에 감독에게 보내는 박수이기도 하다.

 

지금, 바로, 여기는 스스로를 야매시인이라 부르는 황경민 시인이 인문학카페 헤세이티의 입간판을 모아 최근 펴낸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그 제목을 빌려 썼음을 밝히는 일이 옳은 일이라 여기에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