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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 오브 아시아-마스터스>: 절망적으로 마스터(스)를 찾아서

By 서은희

  <컬러 오브 아시아-마스터스>는 연기로 자욱한 공간에서 아무런 대사 없이 오직 몸짓으로만 이야기하는 아피찻퐁 위라세타쿤감독의 <증발>, 시종일관 인터뷰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거짓말>, 소년과 할머니의 이야기를 굳이 옥수수밭까지 끌어온 왕샤오슈아이 감독의 <옥수수밭>, 시체안치소에 거주하는 선글라스 낀 뱀파이어가 나오는 <뱀파이어는 우리 옆집에 산다> 이렇게 총 4편의 단편을 묶었다. 제목에서 이미 밝히는 것처럼 '마스터스' 즉 영화 좀 만들었다고 소문난 감독을 골라서 영화를 만들고 제목을 붙였다. 나름 아시아를 대표한다는 감독들의 총출동이라는 수식어부터 화려했다.

 

  나름 유명하다고 전해지는 아시아 영화 감독 4인이 뭉쳤다. 겉보기에는 독수리 5형제를 능가할 것만 같은 모양새를 보인다. 화려한 껍데기와는 달리 알맹이는 누군가가 쏙쏙 다 빼먹은 모양새를 갖춘 영화가 대부분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고 했던가. 이름값에 넘어가서인지 극장의 분위기는 최고조였다. 첫 상영의 기대를 품고, 영화 시작 전 GV가 있었다. 관객들은 주인공들의 입장을 몰랐지만, 기자들에게는 미리 연락이 갔었는지 그야말로 난리 그 자체였다. 영화는 상영 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었고 곳곳에서는 안내방송 하나 없이 영화 상영 시간을 지연시켰다며 볼멘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야말로 별들의 잔치라도 전개되는 양, 극장 안은 어수선한 분위기 그 자체였다. 하지만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고 했던가. 한국대표 선두주자 임상수 감독이 마이크를 잡고서 했던 말이 새삼 떠오른다. 임상수 감독 본인 영화는 별로지만, 나머지 감독 3명의 영화는 기대가 크다고 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그 말은 겸손이 아니라 철저히 진담이었음을. 임상수 감독의 <뱀파이어는 우리 옆집에 산다>는 어수선하게 시작하다 번잡스럽게 끝을 맺는다. 쓸데없이 무거운 주제의식에만 투철하여 그 무거운 주제에 맞춰서 영화를 늘려 가다 보니 서사구조랄 것도 없이, 영화를 만들다 만 것처럼 보인다. 왜 무리수까지 두며 그 힘겨운 주제를 살리고자 했는지 그 살리고자 했던 주제마저 어눌한 서사에 눌려 살아남지 못했다. 영화를 보면 주제를 피력하고 싶은 것까지는 알겠는데, 문제는 무거운 주제를 일단 세워 놓기만 할 뿐 정작 서사는 그 주체를 따라가지 못해 혼자 방황하고 있다. 무거운 주제 의식을 가벼운 뱀파이어 이야기로 승화시켜 나가려다 보니, 자꾸만 서사는 어긋나기만 한다. 서사랄 것도 없는 헛방귀와도 같은 이야기를 무거운 주제의식을 덧씌우다보니 엉터리같은 이야기는 바다 속에서 쑥 터져버린 그물망처럼 살아남아야 할 물고기는 자꾸만 도망치기만 한다. 이 영화는 일종의 끼워맞추기처럼 따로따로 논다. 주제 따로 소재 따로. 그것은 하나로 어우러지지 못했다.

 

  두번째 주자 일본대표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영화 <거짓말>은 정말 거짓말이라고 믿고 싶을 만큼 손발이 오그라드는 영화다. 이 영화의 핵심은 카메라 기법인데, 영화의 대부분은 클로즈업 숏에 치중하고 있지만, 연기가 떨어지는 배우들의 클로즈업 숏은 관객을 충분히 당황하게 혹은 민망하게 만든다. 짧은 시간동안 연기자들의 답답한 연기를 보고 있노라니, 감독의 연출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표정이 중요한 영화인데 반해 나와세 가오미 감독은 포인트를 본인이 잡고서도 그 포인트를 정확히 집어내지 못했다. 아니 표정이 관건인 클로즈업 숏을 사용했는데도, 정작 감독은 배우의 표정을 전혀 살려내지 못했다. 클로즈업 숏 자체가 불필요한 촬영 방식이 되어버린 셈이다. 클로즈업 숏 자체를 나무란다기 보다는 오히려 시간 계산을 잘못하고 리듬감을 살리지 못한 감독을 탓하고 싶다. 한국 감독은 그저 주제를 살리고자 급급한 나머지 무리수를 둬서 영화를 시체안치소에 가둬 버렸고, 일본 감독은 클로즈업 숏을 오히려 잘못 사용해서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만 보는 참담한 실수를 자행하고 말았다.

 

  혹시나 영화의 지원을 맡았던 영화제 측에서 주제를 정한 것을 감독이 미처 풀어내지 못해서 이런 사달이 났나 하고 봤는데, 주제도 제각각인 것으로 보아 그 문제도 아닌 듯 싶다. 영화 대부분 어디서 급조한 것처럼 기한 내 촉박해서 억지로 이어붙이기를 한 모양새로 관객을 맞이했다. 안타깝게도 철저히 이름값이다. 혹시나 영화를 잘 만들 자신이 없다면 영화를 만들어 달라는 의뢰가 행여 들어오더라도 과감히 사양하길 바라는 마음이 앞선다. 영화를 보는 내내 모 교수의 수업이 떠올랐다. "여러분, 필름은 알고 보면 비싼 물건이니, 제말 막 찍지 말길 바란다." 이 영화는 어쩌면 제작비 일부가 국민의 세금이 모여서 만들어진 영화인지도 모르는데, 제발 그 명성에 알맞은 이름값 좀 하셨으면 하는 바람만 남는다. 혹시나 잘 만들 자신이 없으시다면 과감하게 다른 영화 감독에게 넘기시는 것도 괜찮은 듯 싶다. 생각보다 영화를 만들고 싶은 감독은 수두룩 하고,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 역시도 수두룩하니 말이다. 유감스럽게도 저렇게 영화 만들고 GV한답시고 영화 상영 시간 맘대로 지연시키면서 스크린 앞에 서서 히죽거리며 관객들 비싼 박수 받을 자신 없을 것 같은데.

 

  레오스 카락스의 영화 <홀리 모터스>가 불현듯 떠오른다. 만약 <홀리 모터스>의 각 씬(scene)을 하나씩 발췌해서 단편영화모음으로 묶어냈더라도 아주 훌륭한 단편영화묶음이 되었을 거라는. 어떤 씬을 추려내더라도 서사구조가 막힘이 없이 관객에게 안착되었을 것이다. 임상수 감독의 영화는 단편영화의 호흡을 몰랐다는 것만으로도 용서가 되지는 않는다. 그는 이제 영화 만들기에 관해 다시 생각을 재정립할 때가 도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행여 <컬러 오브 아시아-마스터스>가 궁금하다면, 아직 언급하지 않은 중국 대표주자와 태국 대표주자의 영화가 진심 궁금하신 분이 계신다면, 내일 극장 가서 확인하시길. 언급하지 않은 두 감독의 영화는 졸작에 속하는지, 그나마 범작에라도 속하는지. 혹은 기막힌 수작인지. 만약에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영화를 첫 상영했다면 그의 영화만 감상한 후 바로 나왔을 거란 비탄에 빠진다. 영화가 끝이 난 후 황망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그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관객 얼굴이 생각난다. 도대체 누가 그를 비탄에 빠지게 했는지. 분명 누군가는 반성해야 할 일이다.

 

부디 당신의 명성에 걸맞는 영화를 만들어 주시겠습니까. 제발 부탁드립니다. おねがいしま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