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대학 ‘감각민족지연구소’ 소속의 감독 베레나 파라벨과 루시엔 카스탱- 테일러가 인류학자의 시선으로 찍은 기념비적인 다큐멘터리. 두 감독이 다른 스텝 없이 12대의 고프로 카메라를 들고 저인망 어선에 오른다. 기울어진 시커먼 바다, 물에서 끌려 나오는 쇠사슬, 갑판 위에서 이리저리 휩쓸리는 물고기, 배 주변으로 몰려드는 갈매기 떼, 바다로 쏟아지는 핏물, 물고기를 손질하는 어부들의 모습 등이 이 신묘한 카메라에 담겼다. 서사도 없고 의미도 비어있는 세계. 존재하는 것은 어선 안팎의 시간과 풍경뿐이다. 인간의 것과는 완연히 다른, 차라리 성경에 나오는 바다괴물 ‘리바이어던’의 시선이라 할 만한 고프로카메라의 괴이한 역능에 감탄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가 새어 나올지도 모른다. 경이롭고 황홀한 영화적 체험. (강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