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회 에딘버러국제영화제 개막작
[모번 켈러의 여행]은 [쥐잡이]를 통해 힘과 독창성을 과시했던 린 램지 감독의 두번째 장편영화로서 감각적인 비주얼과 해석의 여지가 많은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크리스마스 트리의 전구가 깜박거리는 가운데, 남자의 벗은 몸을 천천히 쓰다듬는 모번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막 탈고한 소설과 약간의 은행 잔고를 남기고 자살한 상태다. 이 소설이 자기 인생을 새로운 곳으로 데려다 줄 거라고 생각한 모번은 남자친구의 이름을 지우고 자신의 이름을 대신 적어 넣는다. 스페인에서 질펀한 휴가를 보내고 있는 모번에게 출판업자가 찾아와 거액의 계약금을 제시한다. 그들은 슈퍼마켓 계산대에서 일한다는 모번의 말을 다음 번 소설에 관한 이야기일 거라고 받아들인다. 기교적이고 숙련된 솜씨로 부정직한 기회주의자 여성을 묘사하는 여성 감독의 의도는 그다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세심하게 깔아 놓은 이미지와 사운드 트랙을 통해 자신이 떠나고자 했던 혼돈과 공허의 상태로 되돌아온 북부 영국의 한 노동계급 여성의 세계를 감각적으로 관찰할 수 있을 뿐이다. (김소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