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흔이 뚜렷한 얼굴에 우수를 드리운 채 인적이 드문 마을 어귀 그네에 앉아 소일하는 소녀, 황량한 산마루를 지나가는 긴 장례 행렬, 세상사는 아랑곳 않고 밤낮을 가리지 않은 채 플루트를 구슬피 불어대는 노인, 그리고 참혹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는 수많은 남자와 여자와 아이들. 야노 로제비아니 감독은 영화 내내 반복되는 이 이미지들을 통해 이라크에 거주하는 쿠르드족의 역사적 비극을 간결 명료하게 제시한다. 사담 후세인에 의해 자행된 생화학전의 가공할 위력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질병이 창궐하고, 기형아와 장애인이 주민 대부분을 차지하는 쿠르디스탄의 할랍자 마을 풍경을 통해 적나라하게 증명된다. 하지만 천형의 땅에서도 새로운 고아원이 완공되고, 참으로 오랜 만에 결혼식이 거행되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의 싹은 위태롭게나마 살아남는다. 이런 결말은, 학살된 사람들의 충격적인 몽타주 다음에 햇살을 받으며 우렁차게 울고 있는 아기 쇼트가 편집됐던 도입부와 더불어, 오랜 핍박을 극복해 왔고 앞으로도 이겨 나갈 쿠르드족의 강인한 생명력을 강조한다. (김선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