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중국 공산화에 따른 변화는 곧잘 이야기되지만 이데올로기적 시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특히 국민당 정부군으로 타이완에 들어와 원치 않은 정착을 해야 했던 이들의 삶은 더욱 이야기할 여지가 없다. 샤오 추첸 감독은 이데올로기적 전쟁이 이러한 경험에 자의든 타의든 참여하였던 사람들 개개인의 삶에 어떠한 굴곡과 상처를 남겼는가를 탐구한다. 중국 내전의 막바지, 대학을 가기 위해 고향을 떠났던 샤오 추첸 감독의 아버지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군대에 합류했고 이 때문에 고향에서 영영 멀어졌다. 그리움과 체념 속에 40년이 흐른 후 비로소 본토의 고향땅에 발을 디딜 수는 있게 되었지만 고향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아버지도 고향도 삶의 방식이 너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기억에 새겨진 할머니의 은비녀는 강제로 헤어진 가족에 대한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지만 이제는 다시 찾을 수도 만져 볼 수도 없다. 퇴역 군인 요양소에서 쓸쓸하게 삶을 마감하고 있는 아버지의 동료들은 지나온 세월을 담담하게 회고한다. 이들의 목소리에는 거친 분노도 서러운 눈물도 없다. 슬픈 노래만 있을 뿐. (남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