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틀리고 답답한 가족들의 모습이 현대 그리스의 침체상을 반영하는 수작. 안젤리키는 자신의 11번째 생일에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죽는다. 얼굴에는 미소를 띄운 채. 경찰과 사회복지사가 그녀의 자살 원인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지만 가족들은 단지 사고였다고 주장한다. <폭력녀>는 최근 몇 년간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그리스 신인감독들의 재능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경제적, 윤리적 위기에 직면한 그리스의 실상을 반영하는 올해 수작들 중에서도 독창성과 완성도면에서 단연 돋보인다.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리면서 시작되고 다시 문이 닫히면서 끝나는 이 영화에서 문은 부각되는 연출상의 장치다. 폐쇄적이고 경직된 가족 분위기를 대변하는 프레임 속 프레임 효과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런 경직성이 사회복지사 2인의 방문을 연출한 9분에 달하는 롱테이크의 유연성과 극단적으로 대비되도록 한 것은 뛰어난 연출상의 선택이다. 말미에 가족의 정체성 자체를 와해시켜버리는 무시무시한 진실은 그리스가 당면한 위기의 심각성을 절실하게 보여준다.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후 부산을 찾는다. (이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