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명의 감독이 참여한 옴니버스 애니메이션이다. <구십구>와 <화요진>은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일본의 전통적인 예술적 감성과 감각을 극대화시킨 세밀화와 같은 애니메이션이다. 특히 <구십구>는 종이나 기모노의 문양를 이용한 공예적인 섬세함이 돋보이고, <화요진>의 우키요에 판화를 보는 듯한 아름다움을 두루마리에 담긴 형식으로 차용한 것이 흥미롭다. <감보>는 한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붉은 괴물의 마지막 희생양이 될 소녀가 하얀 곰을 만나면서 일어나는 괴물과 곰의 결투를 보여준다. 붉은 괴물의 흉물스러움과 하얀 곰의 성스러움은 인간 세상에서 받아들여지기 힘든 두 괴물간의 싸움처럼 보이기도 하고, 숭고한 곰의 희생으로 인해 되찾게 된 평화에 대한 갈망처럼 느껴진다. <무기여 안녕>은 황폐해진 미래의 도쿄를 배경으로 소대원과 공크와의 액션이 빼어난 작품이자 묵시론적인 공간 묘사가 돋보인다. 공교롭게도 네 편의 애니메이션이 보여주는 폐허와 종말론적인 이미지는 일본에게 닥친 재앙의 그림자가 얼마나 깊은지 짐작할 수 있게 만든다. (박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