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 비전

<미로> : 상실의 프레임, 잔향의 노래

By 황준성

<미로>는 사건의 진실을 좇는 영화가 아니다. 사건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건이 지나간 뒤 인물 안에 남아 울리는 심리적 여진이다. <미로>가 포착하려는 것은 바로 그 여진이 새겨진 얼굴들, 곧 상실을 견디며 살아가는 표정들이다. 이를 가장 응축해 보여주는 장치가 유리창이다. 영화 도입부, 카메라는 집 안 거실에 앉아 있는 영문(고경표)을 창밖에서 응시한다. 유리창 프레임은 그를 마치 스스로 갇힌 인물처럼 고립된 이미지로 드러낸다 . 이는 단순한 배치가 아니라 그의 내면 상태를 시각화한 구도다. 투명하지만 건널 수 없는 경계로서의 유리창은 바깥과 안, 사회와 사적 공간, 삶과 죄책감 사이에 경계선을 긋는다.

 

이러한 구도는 영화 종반부에 변주되어 다시 나타난다. 같은 자리, 같은 구도 속에 이번에는 영문의 아내가 놓여 있다. 달라진 것은 그녀가 더 이상 현재의 인물이 아니라 기억과 부재의 형상으로만 돌아온다는 점이다. 동일한 화면 구성이 시간을 가로질러 두 인물을 겹치게 하면서, 영화는 ‘남은 자의 고립’과 ‘사라진 자의 공백’을 동일한 공간의 같은 프레임 안에 병치한다. 이때 거실 유리창은 영화 속 액자이자 스크린의 축소판처럼 작동한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영문의 삶인지, 기억의 잔상인지, 혹은 죄책감이 투사한 이미지인지 경계는 흐려진다. <미로>는 바로 그 불확실성 속에서 감정을 설명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삶이라는 이야기에 상실이라는 액자를 두른 것이다. 

여기에 두 사람이 각각 부른, 부활의 '사랑 할수록'이 정서의 결정적 매개가 된다. “이젠 너에게 난 아픔이란 걸, 너를 사랑하면 할수록” 이라는 노랫말은 단순한 회상용 배경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도 지워지지 않는 상흔의 방식으로 기능한다. 영문이 남겨진 자의 얼굴로 서 있을 때, 노래는 그가 잃어버린 아내의 목소리를 불러오며, 사랑이 끝내 상실로 귀결되는 잔혹한 역설을 울려 퍼뜨린다. 이러한 영화적 선택이 중요한 이유는, 사건의 전모를 친절히 해명하지 않더라도, 노래 가사만으로도 관객의 공감이 작동하도록 ‘감정의 인과’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영문이 끝내 웃지 못하는 까닭은 단순히 그의 우울한 성격 때문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아내의 죽음 이전부터 이미 두 사람의 관계는 균열되어 있었고, 그 틈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의 간극이 되었다. 영화는 많은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지만, 같은 자리에서 같은 대상을 바라보면서도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열망에 초점을 맞추고, 다른 경로로 움직였음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영문의 우울은 타고난 성향이 아니라, 아내와 나눠 가졌던 감정이 끊어진 자리에서 비롯된 정서의 잔향일 가능성이 크다. 

웃음은 타자와 연결되는 최선의 표정이지만, 영문에게 그것은 자기혐오에 가까웠을 것이다. 웃는 순간 아내를 잊은 자가 될 것 같은 두려움, 그 두려움이 웃음을 검열한다. 그러므로 그의 무표정은 감정의 부재가 아니라 감정의 과잉을 견디기 위한 봉합이고, 애도의 한 형식이다. 웃음을 지우는 행위는 사회적 관계를 포기한다는 뜻이 아니라, 관계를 더 이상 훼손하지 않으려는 마지막 방식이 된다.   

 

고경표의 연기는 이 복합적 층위를 과장 없이, 미세한 신체 언어로 구축한다. 그의 얼굴은 뭉크의 그림처럼 고통을 과장하는 것이 아니라 숨을 고르는 간격, 시선의 머뭇거림, 얼굴 근육의 미세한 경련이 감정의 파고를 대체한다. 그는 감정을 보여주기보다 비워 두기로 전환해 관객의 투사를 허용한다. 그 비어 있음 위에 애절한 노래가 겹쳐지면, 스크린은 창으로, 창은 상실의 감각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그때 비로소 '사랑할수록 멀어지는 존재'의 역설을 이해한다. 멀어지는 것은 타인이면서 동시에 나 자신이다.   

  

결국 <미로>의 유리창과 노랫말은 그들 부부 서로를 반사하는 감정적 장치다. 하나는 시각적 은유로, 하나는 청각적 기억으로 작동하며, 영문을 둘러싼 고립, 죄책감, 애도, 상실의 정서를 압축한다. 이 영화의 윤리는 진실을 드러내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드러난 이후에도 남아 있는 시간을 견디며, 그 시간 속에 머무는 얼굴을 끝까지 응시하게 만드는 데 있다. 그래서 마지막에 남는 것은 사건의 해명이 아니라, 창 너머 여전히 서 있는 한 사람의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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