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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평론단 - 비전

<겨울날들> : 공간과 물성

By 김현구

 도시의 한편에서 허물어지는 집, 얼어붙은 골목길, 겨울 공기에 휩싸여 몸을 웅크린 채 움직이는 도시. <겨울날들>(최승우, 2025)에는 한겨울에 갇힌 공간이 있다. 그리고 카메라는 시선을 고정한 채, 추운 겨울을 버티는 각각의 공간을 응시한다. 카메라는 단지 응시할 뿐, 그 시선 속에 담긴 이야기를 굳이 전달하지 않는다. 그래서 <겨울날들>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카메라가 응시하는 공간과 공간 속에 담겨있는 겨울의 물성이다.

 

 기차역을 통해 도시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겨울날들>은 도시라는 공간으로 흘러 들어오는 사람들의 흐름을 담아낼 뿐, 이들 각자의 서사에 시선을 두지 않는다. 카메라는 도시 안으로 흘러 들어오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통해 얼어붙은 도시가 보이는 나름의 순환과 리듬을 담아낸다. 차갑게 얼어붙은 듯 보이지만 <겨울날들>의 도시는 분명 순환하며 움직이고 있다.

 

 원경에 위치한 카메라가 순환하는 도시의 전경을 바라본다. 그리고 <겨울날들>의 카메라는 도시로 한 걸음 더 다가서, 도시의 골목길과 버스와 지하철 곁에 자리한다. 응달 속에 얼어붙은 골목길에는 뒷모습만 보이며 걸어가는 사람이 있고, 만원의 버스와 지하철은 무표정한 얼굴로 도시의 공간을 지나다닌다. 겨울날의 도시는 멈춰 있는 듯하지만, 실상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겨울날들>의 도시 공간은 끊임없이 순환하며 멈춤을 망각한 공간이다. 그래서 도시는 끝맺음을 상실한 듯한 지친 얼굴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또 옮긴다.

 

 도시의 식당에 죽음을 알리는 뉴스가 들려온다. TV 전파를 타고 <겨울날들>의 공간으로 흘러 들어온 뉴스는 도시의 공간을 스쳐 지나간다. 도시의 한편에는 허물어지는 집이 있다. 순환하는 도시의 한 귀퉁이가 쇠락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도시는 무너지는 몸을 지탱하며 순환하는 것이다. <겨울날들>의 공간은 순환과 쇠락을 함께 한다. 순환의 생동은 쇠락하는 공간에 가로막히고, 쇠락하는 공간은 도시의 순환으로 인해 끝맺음을 상실한다. <겨울날들>의 공간은 끝맺음을 상실한 만큼 생의 기쁨도 사그라든 공간이다.

 

 도시의 공간을, 뒷모습만 보이며 지나가는 각각의 인물이 있다. 그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공간 속으로 홀로 들어왔다 나갈 뿐이다. 인물들은 도시의 순환에 기대어 공간과 공간을 지나가는 한편, 각자의 방안에서 허물어지는 세계를 견디는 듯하다. 도시에 밤이 찾아온다. 밤의 어둠 속에서도 도시의 한 귀퉁이는 허물어지고, 일상의 소음은 누군가를 잠 못 들게 만든다. 그 밤에 단 한 번 하는 알 수 없는 소리가 울린다. 인물은 그 소리에 반응하지만, 소리의 정체를 알 수는 없다. 다만 그다음 아침에도 사람들은 얼어붙은 골목길을 지나고, 차가운 겨울 공기 속에서 도시는 순환을 멈추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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