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 비전

<미로> : 상실이라는 감옥, 배회라는 형벌

By 김예은

 자고로 미로는 헤매라고 만든 것이다. 물론 헤맨 끝에 탈출구를 통해 미로를 빠져나가라는 것이 제작자의 의도일 것이다. 영화 <미로>는 어떤 미로를 만들었을까? 그리고 영화 속에서 탈출구는 등장할 것인가? 우리는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영화의 느린 리듬에 어울려 천천히 찾아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루하진 않을 것이다. 대중에게 친숙한 고경표라는 배우가 친절하게 우리는 안내하며 시작하기 때문이다.

 

 시작은 아버지를 무연고자로 처리하는 희미(위지원)의 장면으로 시작한다. 먹고 살고 팍팍한 세상이라지만 비전이라고는 없는 탐정 사무소 일을 때려치우기로 한 시점에 영문(고경표)이 눈앞에 등장한다. 때려치운 탐정 사무소의 소장도 마다하는 일을 희미는 수락한다. 여기까지 흘러오는 내내 영화의 톤앤매너는 어스름이 낀 새벽처럼 어둑하다. 느리고, 스산하고, 음울하다. 그 까닭은 느릿하게 저며오듯이 깨닫게 된다.

 

 영문은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고 상실의 미로에 빠졌고, 희미는 본 적도 없는 아버지를 겨우 찾았으나 이미 죽어 상실의 미로에 빠진 사람이다. 그리고 영문의 아내 란주(김승윤)를 차로 쳐버린 상기(류경수)는 평범했던 과거를 상실해 자책과 의문의 미로에 갇혀 버린 사람이다. 저마다의 이유는 적절하게 제시된 셈이다. 이들이 갇혀버린 미로는 감옥처럼 막막하다. 자유를 잃고 갇혀 버린 사람들처럼, 이들은 저마다 날카로워진다.

 

 점잖은 영문은 선을 지키는 듯 아닌 듯, 시한폭탄처럼 군다. 뺨을 내리친다거나, 불량한 이들과 어울린다거나. 그러면서도 매너 있는 태도는 견지한다. 이질적인 그의 행보는 갑작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상실의 고통이 발현되는 방향은 여러 갈래니까. 일에 질려버린 희미가 자처해서 영문의 일에 끼어드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부친상을 당한 상실감과 사직해서 자유를 되찾은 백수가 못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그녀는 동지라도 찾으려는 심산인지 적극적으로 영문에게 협조한다. 보상도 기대하지 않은 채 말이다. 상기 역시 끊임없이 자책과 의문 속에서 살아간다. 그에게 평범했던 과거는 되찾을 수 없는 영광과도 같다. 자책은 천천히 그를 좀먹고 있다.

 

 이들은 헤어나올 수 없는 미로를 끊임없이 배회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혹한데, 영문, 희미, 상기는 웃음마저 상실한다. 심지어 아주 짧은 웃음이라도 지으면 영문은 사정없이 제 뺨을 내리친다. 자신에게 그토록 가혹하게 굴면서까지 웃음은 짓지 말아야 할 것이다. 플래시백 장면을 제외하면 이 영화는 컬러로 흘러가는데, 이상하리만큼 흑백영화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이 영화의 색은 어둡다. 서늘하게 굳은 배우들의 표정은 그 어두움에 일조한다.

 

 영화 <미로>는 상실이라는 미로에 갇혀 평생 배회하라는 형벌을 받은 이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탈출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친절한 안내자가 우리에게 있지만, 우리는 탈출구에 도달할 수 없다. 설령 도달한다고 했더라도 그 문을 열고 나갈 수 없다. 차분하고 느린 영화의 리듬 속에서 어두운 미로를 헤매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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