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 비전
철들면 죽는다는데 '철들 무렵'이면 죽을 때를 말하는가?
아흔이 다 되어 글쓰기를 배운 할머니가 평생 살아온 과정을 적어 다섯 개 장으로 나눈 영화에서, 장이 시작될 때마다 또박또박 읽는다. 식민지 수탈로 피폐해진 대한인의 모습, 성노예로 끌려간 사실들, 전쟁 그리고 민주화를 위한 저항과 죽음의 시기를 지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영화 내용과 깊게 연관지을 필요는 없으나, 이 낭독은 전체를 숙연하게 만들고 지금 현재가 그냥 이뤄지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정도로 받아들여도 좋겠다. 어쩌면 이렇게 이뤄진 나라에 사는 지금 우리에게, 너는 철 좀 들어 살고 있나? 묻는 것 같다.
1. 극복할 수있는 가능성에 대해. 2. 밝은 얼굴의 낯선 사람들(정확하게는 기억안난다) 3. 상처 속에 박힌 말뚝 4. 차오를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5. 새날이 밝았다.
부제들을 보면 이야기 진행이 재법 많이 드러난다.
직장에서도 반주로 소주 한병 정도는 몰래 먹고 일하는 아버지 철택(기주봉)은 암 판정을 받는다. 그의 몸은 금간 자기 집 벽보다 더 깊게 병들었다.
정미(하윤경)는 귀신으로 분장한 엑스트라로 출연하는데 그 이상 인정받지 못한다. 생계도 어려운데 이제 아버지 간병까지 해야 한다. 부녀간 평소 대화는 톡톡 튀고 서로 걱정하는 마음은 깊은 듯 보이는데 병원비 문제에서 부터 뭔가 꼬이기 시작한다.
이 둘을 시작으로 가족 범위가 점점 넓어진다. 20년 째 별거 중인 엄마의 생활상, 유치원가는 손자를 둔 큰아버지 가족, 엄마와 이모네 가족 그리고 구순 잔치를 앞둔 외할머니까지. 출연진이 제법 많아 대부분은 잠시 훑어지나 가는데도 이들의 삶이 화면 속에 다 구현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아주 짧게 표현되지만 이들의 특별함 보다 그냥 내 가족이, 주변 가족들이 서로를 위해 노력도 하지만 욕심부리고 다투고 결별하는 일상을 비추기 때문인 것 같다. 감독이 인물을 잡아내는 능력이 상당하다.
가족이란 울타리는 가장 탄탄해 서로 보호도 하지만 넘어가기 어려운 담이 되어 부담을 주고 길을 막고 짓누르기도 한다. 할아버지가 유치원 다니는 손주에게 '넌 내 미래야?' 하면 알아들을까? 형제라도 손을 벌리면 선뜻 주는 사람이 어느 정도될까? 이혼해도 친구처럼 지낼 수 있을까? 노모를 내가 모시겠다고 적극나설 수 있을까? 그 어느 것도 현실에선 쉽지 않고 미루거나 변명을 늘어놓게 된다.
<철들 무렵>은 다투고 외면하더라도 등 돌리기 쉽지 않은 가족의 현실들을 잘 표현한다. 여기에다 오롯이 인물들에 집중하는 화면들이 참 좋다. 유치원생부터 90까지 이 다양한 인물들이 각자 맡은 역할도 잘 소화해 낸다. 부녀가 입원실에서 다투는 장면은 약간 길고 지나치다는 느낌은 있으나 감독이 배우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을 한번 펼쳐 보고 싶었을거라 생각하니 이 또한 나쁘게 보이진 않는다.
카메라는 거침없다. 출연진들 몸동작만 봐도 즐겁고 재미있다. ‘혼신의 힘을 다한다’는 말이 이들에게 딱 어울린다. 당차고 또릿한 정미의 음성은 귓전을 강하게 울리고 철택과 엄마(양말복)의 표정은 화면을 장악한다. 온전히 인물에 집중하고 그 인물이 장면들을 끌어가고, 희망과 부담이 나란히 들어있는 현실에 대해 답을 제시하거나 환상적으로 만들지 않아 더 좋다.
구순 잔치를 마치고 한마디 하는 이 시대 어머니 말씀은 감동적이며 숙연해지고 동시에 가족이란 붙잡는 것도 놓는 것도 아닌 그저 지켜보야만 한다는 생각을 해 본다. 홀로라도 당당히 사는 경우도 많지만, 함께라고 하면서 뜯어 먹을 듯 아웅거리는 것이 세상사이니 철들 무렵은 언제쯤일지 참 알 수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