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 비전

<겨울날들> : 대사하는 순간

By 김하늘

 <겨울날들>은 특별한 사건이나 큰 이야기를 중심에 두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쉽게 지나쳐버리는 사소한 순간 들에 집중한다. "자고 먹고 할 것 다 하는데 뭐가 힘드냐?"라는 질문처럼,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곧장 부조리하게 왜곡되는 말들이 있다. <겨울날들>은 그런 경험을 피하고자 한다. 대신 장면으로, 침묵으로, 그리고 시간의 흐름으로 그 무게를 보여준다.


 영화 속 인물들은 전화를 걸지만 받지 않고, 층간소음에 시달리고,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아 고생한다. 이러한 불편함은 말로 설명하기엔 너무 사소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불편함들은 실제로 삶을 조금씩 갉아먹으며 균형을 무너뜨린다. <겨울날들>은 바로 이 틈새를 비춘다. 작은 고장, 무심한 소음, 끝없이 오르는 계단의 반복이 인물들의 삶을 잠식하고 있음을 곧 깨닫게 된다. 이때 영화는 설명을 덧붙이지 않고, 오히려 대사의 부재 속에서 관객이 스스로 체감하도록 여백을 남긴다.

 적응은 곧 고단함의 또 다른 이름이다. 도시에서의 삶은 이미 주어진 구조 안에서 흘러가지만, 그 구조는 언제나 삐걱거리며 불편함에 노출된다. 철거되는 건물처럼,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삶의 형태가 매일의 장면 속에서 드러난다. 이 과정에서 영화가 건네는 감각은 ‘사라져가는 일상’과 연결된다. 일과가 끝난 뒤 순대국밥에 소주 한 잔을 마시며 느끼는 안도감 같은 건 사실 누구나 알지만, 막상 시간이 지나면 쉽게 잊힌다. 영화는 이런 순간들을 붙잡아 다시 꺼내놓는다. 우리가 살아가며 체감하는 피로, 혹은 안도감은 종종 언어 바깥에 존재한다. 화려한 사건도, 대단한 대사도 없지만, 단지 보여줌으로써 관객의 시선 속에 스며들게 한다. 그렇게 보편의 정서를 발견하게 만든다.

 이 영화가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말하기 어려운 피로감’이다. 계단을 오르고 내리는 게 힘들다고 말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고, 전화를 받지 않는 상대 때문에 속이 상해도 누군가에게 쉽게 털어놓을 수 없다. 영화는 그걸 억지로 설명하지 않고, 차라리 장면으로만 보여준다. 그렇게 영화는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도 이런 순간을 겪은 적 있지 않느냐?”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아 씻지 못한 날, 받지 않는 전화를 붙잡고 있던 기억, 소음으로 인해 잠에 들지 못하는 날. 이런 평범한 경험들이 모여 사실은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있다.

 결국 이 영화는 일상의 미세한 균열과 그 속의 감각을 거창한 사건 없이도 충실히 기록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언어로 풀 수 없는 고단함을 카메라로 붙잡고, 잊히기 쉬운 장면을 다시 꺼내놓음으로써, 한 인간의 시간을 충실히 기록한다. 그 기록이야말로 우리에게 진정한 위로가 될 수 있음을 영화는 비로소 대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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