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 비전
‘돌려줘’
전국 중학생 백일장에서 대상을 탄 지수가 교실 자신의 책상 위에 올려진 메모지에서 발견한 세 글자다. 메모지의 존재가 영화 밖 사건의 연장선에 있는 실제건 지수의 환상이건, 지수의 불안감을 드러내는 단어다. 이 단어는 몇 차례 더 다른 모습으로 영화에 등장한다. 자신의 평범함이 부모의 다툼으로까지 이어지자 아홉 살 지수는 과학체험관 화장실 아코디언 도어 안으로 숨어든다. 그리고 영화에서 ‘미아가 되었다’라고만 표현되는 끔찍한 일을 당한다. 그날 일을 선택적으로 기억하는 지수는 부푼 구름 속을 빠져나온 하얗고 긴 기생충 같은 것이 제 속으로 들어왔고, 비로소 글 쓰는 능력이 생겼다고 믿는다. 그것이, 어린아이가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망각하는 방식이건 자기최면의 방식이건 그런 믿음은 위태롭다. 친절해진 엄마에게 ‘작가님’으로 불리는 특별한 능력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은 지수를 흔든다. 영화 <아코디언 도어>는 중학교 3학년 지수가 이 불안한 감정을 어떻게 대면하는지 흥미로운 방식으로 그려낸다.
‘아코디언 도어’는 온전한 문도 온전한 벽도 아니다. 대체로 공간의 가변성을 위해 설치하지만, 아코디언 도어 안팎의 사람은 온전히 보호받지 못한다. 부모를 피해 찾아든 화장실의 아홉 살 지수도 그랬고, 학교 보건실 침대에 누운 지수와 생리대를 구하러 보건실을 찾은 현주도 그랬다. 영화에서 아코디언 도어 안쪽의 인물은 지수다. 영화는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지수에게, 평범함과 특별함 사이에서 불안해하는 지수에게 아코디언 도어 손잡이를 건넨다. 그 손잡이를 통해 공간을 넓히든 좁히든 그것은 지수 스스로의 몫이다.
영화는 백일장 장면으로 시작한다. ‘파도’를 소재로 글을 쓰던 지수가 지우개로 글을 지운다. 원고지를 수직으로 가르는 지우개의 움직임과 파도 소리가 절묘하게 만난다. 빈 원고지에는 ‘어차피 평범해질 운명이었다.’라는 한 문장만 남는다. 어차피 평범해질 수밖에 없다는 강박은 영화의 시작부터 지수를 괴롭힌다. 영화의 후반부 지수가 물에 빠지는 사건이 있고난 뒤, 똑같은 백일장 장면이 나온다. 이번에는 심한 기침 때문에 글을 쓸 수 없다. 역시 ‘어차피 평범해질 운명’이었던 것일까?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연락이 끊어진 현주를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만났을 때, ‘(축구가) 전처럼 잘 돼?’라고 지수는 묻는다. 반면, 현주는 ‘전처럼 좋아하’는가에 대해 답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원고지가 지수에게 묻는다. ‘너는 누구야?’ 스스로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지수는 어떤 청년으로 성장해 나갈까? 아르바이트 자소서를 원고지에 가득 쓸 수 있는 지수라면, 글쓰기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영화의 마지막에 다시 등장한, 하와이언 셔츠를 입은 청년에게 바다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할 것이다.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이 안은 비좁고 나는 당신을 모른다’ 문학관 방문 장면에서 육필 원고로 등장했던 유희경 시인의 시구절이다. 마이스터고 학생인 지수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영화는 카페 일을 시작하기 앞서 티셔츠를 갈아입는 지수의 뒷모습을 담으며 끝난다. 티셔츠 안에서 지수의 어깨와 목과 머리가 꿈틀댄다. 그 안은 비좁고 스스로도 자신을 잘 모르지만, 천천히 목을 빼는 중이다. 비로소 아코디언 도어를 열고 자신과, 세상과 대면하는 중이다.